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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닛산 GT-R 요코하마 공장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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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닛산의 수퍼카 GT-R의 엔진을 만드는 4명의 다쿠미들이 요코하마 공장 내 작업장에 모였다. 시오야 이즈미, 구로사와 다쿠미, 고즈 노부미쓰, 오야마 쓰네미(사진 왼쪽부터)의 경력을 모두 더하면 100년이 넘는다. [사진 한국닛산]

“구멍에 손을 한번 넣어 보세요. 이 부분이 다른 부분과 좀 떨어져 있죠? 부품 상태에 따라,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 간격이 다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기계로는 할 수가 없고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조절해야 하는 거죠.”

 지난 21일 닛산 요코하마 공장. 10평 남짓한 작업실 안에서 취재진을 마주 대한 구로사와 다쿠미(53)는 차분하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앞에는 조립 중인 VR38 트윈터보 엔진이 놓여 있었다. 닛산의 기술력을 대표하는 ‘수퍼카’ GT-R의 심장이 되는 바로 그 엔진이다. GT-R은 포르셰를 이기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만들어진 닛산과 일본 자동차업계의 대명사 격인 스포츠카다.

 545마력이라는 어마어마한 출력을 자랑하는 이 차량의 엔진은 기계가 아니라 일일이 수작업으로 조립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닛산에서 이 엔진을 조립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4명. 구로사와와 방 한쪽에 수줍은 듯 서 있던 시오야 이즈미, 고즈 노부미쓰, 오야마 쓰네미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조립 라인의 일반 직원들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다쿠미다.

 다쿠미는 장인(匠人)을 뜻한다. 의미 그대로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존칭이다. 하지만 닛산에서 다쿠미는 일반 직원들과 구분되는 ‘기술 장인’을 일컫는 실질적인 직책으로 존재한다. 이들 4명은 엔진 분야의 다쿠미다.

다쿠미이자 자신도 GT-R을 소유하고 있는 고즈노부미쓰가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닛산의 엔진 다쿠미는 도제식으로 선발돼 훈련을 받는다. 구로사와 같은 고참 다쿠미가 부품 조립 분야의 직원들을 상당 기간 살펴보고 관찰한 뒤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는 인재가 있으면 준(準) 다쿠미 후보로 발탁한다. 이후 일정 정도 조련을 받고 국가에서 부여하는 양산형 내연기관조립1급 자격증을 취득하면 준 다쿠미가 된다. 준 다쿠미로 상당 기간 경력을 쌓아야 비로소 정식 다쿠미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입사 후 6개월이면 누구나 부품 조립을 할 수 있지만 준 다쿠미가 될 정도의 숙련도를 갖추려면 최소 2년 이상이 걸린다.

 이들 4명의 다쿠미가 일반 조립부서 직원 20명과 한 팀을 이뤄 만드는 GT-R용 엔진은 하루에 17개, 한 달에 500개다. 기본 부품의 숫자만 374개이고 엔진 1개가 최종 완성되는 데 6시간이 걸린다. 물론 수작업을 통한 엔진 조립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로사와는 “엔진을 조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체크 포인트만 120군데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GT-R에 장착되는 545마력의 VR38엔진. 앞부분에 엔진을 만든 다쿠미의 이름판이 부착돼 있다.

 조립은 클린룸이라고 불리는 작은 작업실에서 진행된다. 클린룸은 23도의 온도와 52~57%의 습도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기압도 조절한다. 외부 기압이 1이면 방 안은 1.2 정도로 맞춘다. 먼지가 고기압에서 저기압 쪽으로 이동하는 원리를 이용해 외부 이물질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다. 온도, 습도, 기압 조절도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컴퓨터를 통해 전자식으로 한다. 기계를 이용할 경우 기계 자체에서 오염물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클린룸 전용 복장으로 갈아입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때문에 다쿠미들은 자신들이 높은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해야 하는 식품회사 직원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조립작업은 굉장히 정밀하게 이뤄진다. 이들은 10마이크론(1㎜의 100분의 1)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는 쇠줄자를 사용한다. 줄자를 부품과 부품 사이에 집어넣어 부품 간 간격이나 헐겁고 빠듯한 정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조율한다. 이들은 일부러 부품과 부품 사이를 꽉 조이지 않는다. GT-R처럼 고속 트랙을 달리는 스포츠카의 경우 운전자들이 가혹하게 운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률적으로 빽빽하게 조립해 놓으면 마모가 빨리 발생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간격을 띄워야 하는지 정해진 것은 없다. 그걸 제대로 조율하는 것이 다쿠미들의 몫이다.

닛산의 `수퍼카` GT-R

 왜 이렇게 힘들고 비효율적으로 수작업을 고수할까. 답은 간단하다. 품질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엔진 부품들은 기계를 통해 모두 같은 사이즈로 제작돼 나오지만 날마다 철의 성분도 조금씩 다르고, 찍혀진 상태도 조금씩 다르다. 같은 구멍이라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같은 차이를 손으로 감지해 최적화된 조립을 하는 것이다. 기계로는 불가능하다.” 수작업 고수 이유에 대한 구로사와의 설명이다. 한국닛산 관계자는 “국내 닛산 정비업자들이 ‘다쿠미가 조립한 엔진이 기계로 조립된 엔진보다 최소 5마력 이상 출력이 더 높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쿠미들은 이력이 제각각이지만 모두 자동차와 자동차 엔진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름 역시 ‘다쿠미(工)’인 최고참 다쿠미 구로사와는 원래 프로축구 선수였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직업 선수로 뛸 수 없게 돼 닛산 실업축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로사와는 “이곳에서 겨우 3일 훈련을 했는데 너무 하기 싫더라. 회사 구경에 나섰는데 엔진 만드는 게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1980년부터 33년간 이곳에서 일했고, 다쿠미로만 20년을 보냈다.

 시오야 이즈미는 스카이라인 등 닛산의 자동차들을 좋아해 이곳에 지원하게 된 케이스다. 고즈 노부미쓰 역시 닛산차들이 많이 등장하는 TV드라마를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 닛산행을 결심했다. 그는 구형 GT-R을 직접 운전하는 오너이기도 하다.

 GT-R의 연식 변경 최신 모델인 2014년형 GT-R은 지난 19일 닛산의 요코하마 본사에서 처음 공개됐다. 함께 공개된 GT-R 니즈모(닛산의 모터스포츠용 고출력차를 통칭하는 브랜드)는 최고 출력이 600마력에 달한다. 이 차는 모터스포츠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7분8초679 만에 주파해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GT-R 니즈모용 VR38 엔진 역시 4명의 다쿠미들이 만든다.

 VR38 엔진에는 다른 엔진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외관상의 특징이 하나 있다. 엔진 전면에 작은 이름판이 부착된다는 점이다. 그곳에 새겨지는 이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다쿠미들의 것이다. GT-R의 엔진을 만든 장인들에 대한 존중이 이름판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셈이다. 물론 엔진을 만든 사람이 그 엔진의 품질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구로사와는 “내 이름판이 엔진에 부착되는 순간 내가 닛산을 대표하고 GT-R 엔진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느껴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요코하마=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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