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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시정연설 뒤 의원·경호요원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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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며 새누리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앉은 채로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민주당 의원 다수가 일어서서 맞이했다. [오종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施政)연설이 끝난 직후인 18일 오전 10시30분 국회 본관 앞. 민주당 의원 100여 명이 박근혜정부 규탄대회를 열기 위해 본관 앞 계단 밑으로 몰려갔다. 이때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 대통령 경호를 지원하는 경찰경호대 현모 순경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강 의원이 대기 중이던 청와대 경호지원 버스의 문을 발로 차면서 “대통령도 갔는데 빨리 차를 빼라”고 요구하면서다.

 경호실에 따르면 강 의원은 “야! 이 새끼들 너희들이 뭔데 여기다 차를 대놓는 거야, 차 안 빼!”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간 현 순경이 차에서 내려와 강 의원의 상의 뒤쪽을 잡아당기며 “누구시길래 차량을 발로 차고 가십니까”라고 항의했다. 이에 주변에 있던 민주당 노영민·정성호 의원 등은 “당신 누군데 의원 멱살을 잡나” “청와대가 눈에 뵈는 게 없느냐”며 격렬히 항의했다.

 경호실 측에 따르면 현 순경은 강 의원이 의원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아 처음엔 의원인 줄 몰랐다고 한다. 현 순경과 강 의원이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강 의원의 뒷머리와 현 순경의 얼굴이 부딪혀 현 순경의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났다. 현 순경은 “차량을 왜 차느냐. 의원이면 사람 때려도 되느냐”고 따졌다. 경호실 측은 강 의원이 일부러 머리로 현 순경을 들이받았다고 주장했지만 현장에 있던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현 순경과 또 다른 경호실 직원이 강 의원의 목덜미를 잡고 끌고 가는 과정에서 강 의원이 허우적대다 머리가 부딪힌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반발이 거세지자 경호실 측은 현 순경을 국회 본관 2층 화장실로 대피시켰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문제의 경호 차량 두 대가 출발하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다가 경호실 측이 유감 표시를 약속하고서야 오후 1시50분쯤 봉쇄를 풀었다.

 사태가 진정된 뒤 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지나가면서 두 번째 버스 차량의 열려 있는 문을 발로 툭 차면서 ‘빨리 차 빼세요’라고 한마디 한 것일 뿐”이라며 “그러자 두 명 이상의 경호원이 약 3분 이상 저의 목을 조르고 뒤로 젖히고, 양손을 뒤로 꺾어 동료 의원들이 항의하고 나서야 그 상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호원의 입술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는 그 이후에 들었다. 경호원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손도 경호원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고도 했다.

 민주당 정호준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경호원이 야당 의원을 폭행하는 것은 유신 시절에도 볼 수 없었던 일”이라며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통진당은 마스크 시위

하지만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강 의원은 18대 국회에서도 동료 의원과 주먹으로 치고 받은 적이 있다”며 “오늘 강 의원의 행동은 국회의원답지 않은 낯부끄러운 광경”이라고 비난했다. 강 의원은 2010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과 주먹다짐을 하다 곁에 있던 국회 경위를 때린 혐의(상해)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으며, 2009년 미디어법 표결 때도 여당 보좌관을 폭행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회 연설 직후 벌어진 이런 볼썽사나운 사건은 대한민국 정치의 품격이 어느 수준인지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을 했을 때 대선에서 맞붙었던 공화당 의원들까지 박수로 환영했던 풍경은 아직 우리에겐 낯선 그림이다.

 시정연설이 이뤄진 본회의장에서도 품격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 연출됐다.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새누리당 의원 전원과 민주당 의원 다수는 기립박수로 맞이했다. 하지만 민주당 우원식·문병호·이인영·양승조·김승남 의원 등은 일어서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연설 도중 33번 박수를 쳤지만 민주당 의석에선 박수 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퇴장할 때도 새누리당은 이재오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일어서서 박수로 배웅했지만 민주당 의원은 대부분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나마 조경태 의원이 유일하게 기립했다.

 법무부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항의해 삭발 시위 중인 통합진보당 의원 5명은 ‘민주’라는 검은색 글씨가 적힌 흰색 마스크를 쓴 채 연설을 청취했다. 통진당 김선동 의원은 연설 도중 ‘정당해산 철회’라는 현수막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민주당에 몸담았던 조순형(7선) 전 의원은 “국가라는 사회공동체에 살면서 국가원수에게 예우를 갖춘다고 민주당이 양보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예의는 지키면서 잘못한 건 비판하고, 요구사항을 주장해야 국회가 선진화되는 것”이라며 국회의 품격 실종을 비판했다.

글=김정하·이윤석·김경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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