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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자식 위해 지킨 아파트 한 채가 죄인가요" … 대치동 할머니의 하소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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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66) 한 분이 편지를 보내왔다. 중앙일보를 20년 넘게 구독 중인 독자라 하셨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 강남에서도 요지인 E아파트 102㎡(31평형)에 산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을 못 받게 된 소회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대치동 아파트는 강남·북의 집값 차이가 별로 없던 1985년 6월 면목동 집을 팔아 구입해 29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당초 대치동을 택한 이유도 다른 게 아니었다. 발달장애인인 둘째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통학버스 정류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도 어려서는 줄 서서 강냉이죽·우유죽을 배급 받아 먹어보았고, 국민(초등)학교 때는 가마니 깔고 공부했고, 성장기에는 재봉사 일도 하며 살았습니다. 가난한 남편에게 시집와서 정말 동동거리며 살았습니다. 결혼생활 42년에 단 한 벌의 정장 옷도 안 사봤고, 안 믿으시겠지만 아들 둘 데리고 외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바보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살 수밖에 없게 하는… 저에게는 발달장애 1급 아들이 있습니다. 4살 때 장애 판정을 받고 6살부터 특수학교에 다녔습니다. 열아홉부터 마흔 살이 된 지금까지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남편(71)은 13년 전 퇴직하면서 퇴직금 8000만원을 받았다. 퇴직금과 젊을 때 저축해 놓은 약간의 돈에서 나오는 이자, 매달 60여만원의 국민연금, 아들의 장애연금(월 16만7000원)이 할머니 가족의 수입 전부다. 시설에 있는 장애 아들에게는 매달 50만원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강남에 집이 한 채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은 물론 노령자 기초연금에도 해당되지 않는 현실이 부당하게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복지법에는 장애인 부양의무제라는 법이 있어서 남편이 일흔둘인데도 늙은 부모가 늙어가는 장애 자식을 부양해야 한다네요.”

 할머니는 “집 팔아 싼 곳으로 가면 돈이 남는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지금도 서운하다. “저에게 이 집은 장애 자식을 위해 아껴두어야 할 모든 것입니다. 나 죽고 나면 동기간에 누군가가 봐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이라도 남겨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이라고 다 같은 서울이 아니고, 강남 주민도 다 같은 처지가 아니다. 사는 형편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강남 밖 주민들은 왠지 질시와 경원을 담아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기초연금이든 건강보험이든 정부당국이 개개인의 형편을 치밀하게 파악하고 맞춤형 설계를 해야 하는 이유다. 기초수급자격 탈락을 비관해 벌써 몇 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만든 부양의무제라는 것도 재고해야 할 것 같다. “집 지키며 아끼고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억울하다”는 할머니의 호소가 가슴을 찌른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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