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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후예 "위험감수 장려하는 게 정부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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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애덤 스미스의 고택 수리 모금을 위해 방한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멀리스 교수(왼쪽)와 리처드 월터 10대 버클루 공작이 스미스의 사상과 일생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멀리스 교수 뒤편에 보이는 것이 스미스의 고택. 버클루 공작의 선조는 250여 년 전 스미스를 재정적으로 후원했으며 함께 유럽 여행도 했다. [사진 한국밀레니엄연구원]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1723~90)가 1778년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팬뮤어하우스(Panmure House)를 수리하고 확장하기 위해 국제적인 모금이 전개되고 있다. 목표는 팬뮤어하우스를 ‘철학·경제 이슈에 대한 교육·토론·이해의 국제적인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고택(古宅)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다.

 모금을 위해 199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멀리스(77)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와 리처드 월터(59) 제10대 버클루 공작이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다. 모금 행사는 한국밀레니엄연구원(이사장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이 12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프라움하우스에서 열었다.

따분한 그랜드투어 … 『국부론』 써

 모금 행사에서 버클루 공작은 경제학자들도 잘 모르는 애덤 스미스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런 내용이다. 그의 선조인 제3대 버클루 공작 헨리 스코트(1746~1812)는 스미스와 함께 1764년 유럽으로 그랜드투어(grand tour)를 떠났다. 그랜드투어는 당시 영국 상류층 자녀의 유럽 수학 여행을 말한다. 스미스는 동행의 대가로 여행 기간 중 연봉 500파운드(1억원)를, 여행이 끝난 후에는 평생 매년 300파운드의 연금을 받았다. 스미스가 『국부론』 집필을 시작한 계기 중 하나는 버클루 공작과 함께한 여행이 너무 따분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랜드투어 덕분에 재정적으로 안정됐던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그랜드투어를 맹비난한 것이다. 스미스는 여행을 다녀온 젊은이들이 더 버릇없고, 더 방탕하고, 더 무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멀리스 교수는 스미스의 ‘학술적인 후손’이다. 스코틀랜드는 노벨상 수상자 10명을 배출했는데 경제학상 수상자는 멀리스 교수가 유일하다. 모금 행사 전에 그를 인터뷰했다. 우선 고전 중의 고전인 『국부론』의 현재적 가치에 대해 물었다. 멀리스 교수는 “『국부론』은 일반인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학생이나 학자를 위한 교과서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영감을 주고 있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독자들은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원리들이 『국부론』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노벨 경제학상

 오늘날 좌파·우파 모두가 스미스에게 구애하는 현상에 대해 묻자 멀리스 교수는 “경쟁적이고 자유로운 세계를 지향한 점에서는 우파, 가난의 극복과 평등을 꿈꿨던 점에서는 좌파였다”고 대답했다.

 멀리스 교수는 1964년 ‘역동적 경제를 위한 최적 계획’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50여 년 전 논문이지만 요즘에도 절실한 내용일 것 같다”고 했더니 멀리스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만 해도 계획이 경제를 운영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은 위험감수(risk-taking)를 장려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투자는 위험부담이 큰 투자다. 한국이 창조경제를 추진하고 있는데 창조적인 것은 가장 위험부담이 큰 것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국 스스로 평가절하해 ‘덜 행복’

 증세에 대해서 물었더니 “대부분의 국가들은 재분배를 위해 세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한국의 경우 연금 규모가 너무 작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멀리스 교수는 “한국은 스스로를 평가절하해 ‘덜 행복한’ 경향이 있다”며 “다른 나라들은 한국을 부러워 한다.”고 말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스미스나 데이비드 흄(1711~76) 같은 인물을 배출한 비결에 대해 멀리스 교수는 “교육에서 앞섰기 때문이다”며 “스미스나 흄은 크리스천이 아니었으나 당시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성경 읽기를 강조해 스코틀랜드가 타 지역에 비해 문맹률이 낮았고 교육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미국 사람이 ‘누가 될 것 같으냐’고 물어봐도 나는 대답을 회피한다.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훌륭한 한국인 경제학자들이 특히 해외에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팬뮤어하우스 (www.adamsmith.org/panmurehouse) 측은 목표액 1600만 달러 중 670만 달러를 확보했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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