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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92개 면적에 열대·남극·사막 생태계 … "세계 일주한 기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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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30일 오전 충남 서천군 마서면에 위치한 국립생태원 에코리움 전시관의 열대관.

 바람이 선선한 바깥과는 달리 더위가 느껴지는 높이 35m의 대형 온실이다. 짙은 녹색의 열대식물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쇠줄을 감고 올라간 덩굴식물은 아파트 12층 높이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뻗어 나갔다. 탐방로 주변에는 열대 물고기와 뱀 등을 기르는 어항과 사육장이 설치돼 있었다. 커다란 버마비단뱀은 유리창을 내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녹음된 새 소리까지 울려퍼지고 있어 마치 열대 정글 한가운데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전북 김제에서 버스를 타고 온 30여 명의 관람객은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한결같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열대관을 둘러보던 50대 주부는 “국립생태관 규모가 아주 크고 잘 꾸며진 것 같다”며 “집에서 가깝고 해서 자주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금강 하구둑을 사이에 두고 전북 군산과 마주하고 있는 충남 서천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지난달 28일 환경부 산하 특수법인으로 공식 출범한 국립생태원이다.

 서천군 마서면 일대 99만8000㎡(축구장 면적의 92배)의 부지에 들어선 국립생태원은 2009년 7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12월 건물이 준공됐다. 총 34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곳에서 기르는 동물은 240종 7942마리, 식물은 4865종 110만 그루나 된다.

 지난 3월부터 임시 운영에 들어간 생태원은 다음 달 개원 행사를 앞두고 문서로 사전 신청한 경우에만 관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내년 초부터 일반인도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3월부터는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다.

열대관 보리수 높이 감안 35m 높이

 이 생태원의 핵심 시설은 ‘작은 지구’라고 할 수 있는 에코리움(Ecorium) 전시관이다. 마치 세계일주를 하는 것처럼 이곳은 지구의 대표적인 기후대별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높이 12~35m에 열대·사막·지중해·온대·극지 등 5개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2만1932㎡(축구장 면적의 두 배)에 이르는 전시관 면적만 본다면 2001년 건설된 영국 콘월의 세계 최대 온실 ‘에덴(Eden) 프로젝트’의 2만3000㎡와 비슷하다. 또 1991년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들어선 ‘바이오스피어(biosphere·생물권) 2’의 유리 구조물 면적 1만2700㎡보다 넓다.

 취재진을 안내한 양호제 대외협력팀장은 “이곳 생태관은 동식물을 함께 배치한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사막관에는 갖가지 선인장과 함께 목도리도마뱀과 검은꼬리프레리독이 전시되고 있었고 극지관에는 펭귄이 수영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지중해관에서는 바오밥나무와 식충식물이 눈에 띄었다.

 온대관에는 서천 지역보다 따뜻한 제주도 곶자왈 생태계를 옮겨다 놓았다. 곶자왈은 용암바위가 널린 곳에 열대·한대의 식물이 뒤섞여 자라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말한다. 생태원에서는 이곳에 야생조류인 곤줄박이 20마리를 풀어놓았다.

 생태원의 동물 분야 김두환 전문위원은 “곤줄박이는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잣·땅콩 등 먹이를 얻어먹기도 한다”며 “유리창에 부딪히는 일도 적고 사람과 교감도 쉬워 풀어놓았다”고 말했다.

 식물 분야의 오창호 전문위원은 “열대관 높이를 35m로 한 것은 30~40m까지 자라는 보리수고무나무 때문”이라며 “석가모니 부처가 득도할 때 지켜봤다는 바로 그 보리수고무나무에서 얻은 종자를 기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한 스님이 종자를 얻어다가 제주도에서 기르고 있던 것을 열대관에 옮겨다 심었다고 한다. 오 전문위원은 “보리수고무나무의 성장 속도가 빨라 지금은 키가 5m지만 10년 뒤에는 30m 이상으로 자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동물을 풀어놓으면 고이 길러놓은 식물들이 상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오 전문위원은 “식물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가슴 아프지만 생태라는 개념을 생각한다면 식물과 동물이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며 “식물 잎을 벌레가 먹고 새들이 벌레 먹고 배설하는 그런 생태계를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에는 에코리움 바깥 야외에도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한반도 숲(3만8303㎡)에는 동백나무·소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구상나무 등 한반도 기후대별로 특징적인 숲을 조성해 놓았다. 제주도와 남해안의 난·온대 상록활엽수림대부터 아한대 침엽수림대까지 구성돼 있다.

 한반도 숲은 고산생태원(1만3000㎡)으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백두산·설악산·지리산·한라산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한여름 기온을 낮추기 위해 온도가 섭씨 15도로 일정한 지하수를 순환시키면서 냉풍을 만들어 보내는 지중 냉풍장치 등을 설치해 주변보다 기온을 5도 정도 낮추도록 설계돼 있다. 에코리움 앞의 습지생태원(3만6820㎡)은 생태원 시설이 들어서기 전 논이 있던 이곳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습지생태원에는 수련·가시연꽃·삼백초·자라풀 등 85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습지생태원 위쪽에는 용화실못(6만9055㎡)이라는 커다란 연못(저수지)이 자리 잡고 있어 습지생태원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한다. 원래 이곳에 있던 용화실방죽을 확장했다. 겨울철이면 원앙·큰고니 같은 겨울철새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취재팀이 찾은 이날 오전에도 벌써 흰뺨검둥오리 같은 겨울 철새가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었다.

흙 제거하고 식물 들여와 30% 썩어

 야외공간 담당자인 조수현 연구사는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이 피고 지기 때문에 5월부터 5개월 정도는 늘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봄에는 조팝나무·진달래·산철쭉·복수초·매발톱이 피고 여름에는 습지에서 연꽃·수련·노랑어리연꽃이 피어난다. 가을에도 구절초·해국·솔채꽃·털머위가 아름답다. 취재팀이 찾은 이날에도 붉게 물든 화살나무의 단풍이 고왔다.

 에코리움 뒤편으로는 29개 건물의 크고 작은 유리온실이 설치돼 있었다. 에코리움에 전시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식물을 재배·증식하는 시설이다. 습도·온도·광도 등이 자동 조절되는 최첨단 온실이다.

 생태원에 심을 식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11년 7월. 지난해 내내 새로 들여온 식물을 심었다. 에코리움의 동식물을 들여올 때도 어려움이 작지 않았다. 검역 때문에 식물 뿌리에서 흙을 다 제거한 상태로 들여와야 했기 때문이다. 선박으로 운송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린 탓에 식물의 30% 정도는 컨테이너 속에서 말라죽었다고 한다. 컨테이너가 곰팡이로 감염된 경우 전부 폐기한 경우도 있었다.

 동물도 쉽지는 않았다. 극지관의 펭귄을 일본 수족관으로부터 들여올 때는 담당 전문가들이 일본으로 가 2주일 동안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펭귄의 습성을 확인하고 얼굴을 익힌 뒤 같은 비행기로 들어왔다.

 다음 달 정식 개원식을 하며 탐방객을 받을 예정이지만 국립생태원은 아직 다 완성된 게 아니다. 이제 겨우 옮겨 심어놓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더 자라야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조수현 연구사는 “식물을 운반해오면서 가지를 치기도 했기 때문에 2~3년은 지나야 가지가 자라 그늘도 만들고 휴식 공간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원은 서천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돼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89년 정부는 군산과 서천 앞바다를 군장국가산업단지로 지정했다. 군산 쪽은 매립공사를 진행했으나 서천 장항 쪽은 환경 훼손 논란으로 공사가 지연됐다. 18년 동안 참아왔던 서천 지역 주민들은 2006년 공사 재개를 요구하며 나섰고 초등학생 등교 거부와 나소열 군수의 단식투쟁으로 이어졌다. 이에 2007년 6월 환경부 등 6개 정부 부처가 나서 갯벌 매립 대신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내륙 생태산업단지 등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일단락됐다.

 서천군의 이대성 서천발전전략사업단장은 “생태원에서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지역 사람을 고용하고 편의시설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등 지역과 계속 연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맡았다. 공생하는 인간이란 의미의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란 단어를 만든 최 원장은 “개발사업에 대한 생태학적 타당성을 밝힘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데 국립생태원이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 원장은 또 “갯벌 훼손 대안으로 설치한 시설인 만큼 서천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서천군과 긴밀한 소통을 하겠다”며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려면 국립생태원이 세계적인 연구·전시기관으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등과 경쟁해 살아남으려면 생태학의 기초부터 다지는 게 필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천=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강정현

사진 설명

1 국립생태원의 핵심 시설인 에코리움이 주변 야트막한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에코리움 5개 전시관 가운데 가장 높은 왼쪽의 열대관은 앞으로 식물이 계속 자랄 것을 감안해 35m 높이로 설계됐다. 에코리움 외부에도 한반도숲과 습지생태원 등이 있다. [서천=강정현 기자]

2~6 에코리움 내부 전시관. 왼쪽부터 반달가슴곰 박제가 전시된 극지관, 물속에서 헤엄치는 극지관의 펭귄, 다양한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사막관, 정글처럼 식물이 우거져 있는 열대관, 야자나무가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 지중해관의 모습. [사진 국립생태원]

7~8 2001년 영국 콘월에 들어선 세계 최대 온실 ‘에덴프로젝트’(사진 위) 시설과 1991년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들어선 ‘바이오스피어2’.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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