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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구렁서 흥청대는 공기업 손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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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14일 오전 7시30분 서울 은행연합회관에 공공기관장 20명을 불러모았다. 부채가 많거나 과도한 복지·임금을 고수하고 있는 공공기관을 질책하기 위해서다. 고정식 광물자원공사 사장,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 장석효 가스공사 사장,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이재영 토지주택공사 사장(왼쪽부터)이 현 부총리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엔 1000만원짜리 스파 욕조, 내부 벽면은 대리석으로 꾸몄고, 천장은 수입 목재를 사용했다. 욕실엔 방수형 TV도 걸려 있다. 인천시 옹진군 영흥화력발전소의 직원 비상숙소 내부 모습이다. 한국남동발전이 최근 지은 이 건물은 명목만 비상숙소지 실제로는 초호화 펜션이다. 숙소 공사에 쓴 돈은 20억원. 남동발전은 이런 숙소를 영흥화력발전소 근처에 네 곳이나 두고 있다. 이 기업은 지난해 1600억원의 흑자를 냈다. 부채비율은 100%로 재무상황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남동발전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한국전력은 55조원의 빚을 안고 있다. 모기업은 빚과 적자에 시달리는데 자회사는 돈이 남아 호화시설까지 짓는 상황이다.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한국시설안전공단. 이곳의 노사 단체협약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정점을 보는 듯하다. 직무와 관련 없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됐을 때 휴직이 허용된다. 창업에 나설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창업 휴직기간은 기본 3년에 1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모럴 해저드에 빠진 공기업 대수술에 나섰다. 예산 낭비와 지나친 복리후생이 수술의 초점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20개 주요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조찬간담회를 했다. 참석자는 과다한 복리후생과 임금을 지급한 상위 8개 기관(시설안전공단·무역보험공사·건강보험공단·인천국제공항공사·근로복지공단·수출입은행·한국투자공사·대한주택보증)과 부채 상위 12개 기관(한국전력·토지주택공사·석유공사·가스공사·석탄공사·철도공사·수자원공사·철도시설공단·도로공사·광물자원공사·한국장학재단)의 기관장들이다. 현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파티는 끝났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러면서 “이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재정위험 관리에 총력을 쏟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현 부총리는 “민간 기업이었다면 감원의 칼바람이 몇 차례 불고 사업 구조조정이 수차례 있어야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국정감사에서 아무리 지적해 봤자 고쳐지는 게 없으니 자괴감이 든다”는 국회의원들의 말도 인용했다.

 기재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임원들의 보수체계를 조정할 방침이다.

또 불합리하거나 과도한 공공기관 직원의 복리후생 수준을 확 고치겠다고 했다. 특히 과거 5년간 부채 증가를 주도했던 토지주택공사와 한전 등 12개 기관에 대해 부채 규모와 발생 원인 등을 올해 말까지 자세히 공개하도록 했다.

 마침 이날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발표가 이목을 끌었다.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한국신용평가와 공동 개최한 ‘제11회 연례 콘퍼런스’에서 한국의 신용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공기업 부채를 꼽은 것이다. 톰 번 무디스 수석 부사장은 “한국은 재정건전성이 우수해 ‘Aa3’ 등급과 ‘안정적’ 등급 전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공기업 부채가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지난 몇 년간 급속도로 늘어난 공기업 부채를 우발채무 요소로 보고 한국 신용등급 평가에 고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화여대 박정수(행정학과)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독점적으로 운영되는 공기업들이 모럴 해저드를 보인 것에 대해서는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그간 정부가 공기업에 지나치게 간섭한 점 역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김동호·최준호·이정엽·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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