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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제친 베이컨 … 1528억원, 가장 비싼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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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된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 세 점 각각 147.5×198㎝의 대작이다. [뉴욕 AP=뉴시스]
프랜시스 베이컨

세계 미술품 경매의 신기록이 또다시 깨졌다.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92)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1969)이 1억4240만 달러(약 1528억원)에 팔렸다. 지난해 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1895)가 세운 1억1992만 달러(약 1286억원) 기록을 깨며 ‘절규보다 더 무서운 그림’이 됐다.

 크리스티 뉴욕 경매소는 12일(현지시간) 열린 ‘전후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베이컨의 삼면화(triptych)가 “8000만 달러로 시작, 6분 만에 세계 최고가로 낙찰됐다”고 밝혔다.

 생존 미술가의 새 기록도 나왔다. 미국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58)의 대형조각 ‘풍선 개(Balloon Dog)’가 5840만 달러(약 626억원)에 팔렸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 팝가수 에릭 클랩턴(68)이 내놓은 게르하르트 리히터(81)의 ‘추상화(Abstraktes Bild) 809-4’가 세운 2132만 파운드(약 363억원) 기록 또한 깨졌다.

제프 쿤스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풍선 개’ (307.3×363.2×114.3㎝). [뉴욕 로이터=뉴스1]

 ◆뭉크 기록 1년 만에 경신=뉴욕타임스는 “7명의 응찰자가 달려들어 경매장은 후끈 달아올랐고 1억 달러가 넘어가자 세계 미술시장의 파워맨으로 꼽히는 래리 가고시안도 자리를 떴다. 낙찰자는 뉴욕의 화랑주 윌리엄 아콰벨라다. 익명의 응찰자를 대행한 걸로 보인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아콰벨라는 2011년 이 그림의 주인공인 프로이트의 별세를 세상에 가장 먼저 알린 지인이기도 하다.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은 베이컨이 그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프로이트(1922~2011)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세 폭짜리 회화(트립틱)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친손자다. 1945년부터 베이컨과 교류했다.

 국내에서 베이컨의 작품은 그리 인기 있는 편은 아니다. 서울옥션 최윤석 이사는 “국내 시장에선 베이컨의 판화가 더러 거래될 뿐 유화의 거래는 드물다”고 말했다. 최근엔 베이컨의 판화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그림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왜 베이컨인가=이른바 ‘교과서 명작’이며 현존 네 점 중 세 점이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뭉크의 ‘절규’는 경매 출품 소식이 알려질 당시부터 화제를 모으며 ‘세기의 경매’로 거론됐었다. 그런데 경매에 처음 나온 베이컨의 이 작품이 ‘절규’를 뛰어넘은 이유는 뭘까.

 크리스티 측은 “20세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20세기 표현주의 회화의 두 거장의 창조적이고 감정적인 연대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컨은 평생 인물화에 천착한 것으로 유명하다. 얼굴 형상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리는 게 장기다. 기독교 성화에서 삼위일체의 편재(遍在)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돼 온 삼면화 형식을 비틀어, 그 속에 인간을 뭉개진 고깃덩어리처럼 그려 넣었다. “젊었을 때 나는 그림을 위한 극단적 주제를 찾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보니 내게 필요한 모든 주제는 내 삶 속에 있더라”는 말을 남겼다.

 베이컨은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마구간을 개조한 스튜디오에서 61년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채 자폐증 환자처럼 그림에 몰두했다. 성적 소수자이기도 했던 그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그림은 인간의 심연을 드러내는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얻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95)는 『감각의 논리』에 이렇게 썼다. “베이컨은 ‘짐승에 대한 연민’이라고 하지 않고 차라리 ‘고통받는 인간은 고기다’라고 말한다. 고기는 인간과 동물의 공통 영역이고, 그들 사이를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이다. 화가는 확실히 도살자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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