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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초래한 몰카 범람 시대, 투명 망토라도 입어야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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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가수의 연애 장면, 지하철에서 누군가 저지른 엉뚱한 실수 등이 모두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떠도는 세상입니다. 비밀이 없는 세상, 그 원흉은 스마트 기기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 기기가 보급되면서 상대방 동의를 구하지 않고 특정 장면을 찍고 저장하고 유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휴대전화나 태블릿PC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시계나 안경처럼 좀 더 몸에 밀착돼 상대가 촬영 사실을 더 알아차리기 어려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몰래카메라 같은 범죄는 더욱 손쉽게 이뤄지겠지요. 신문과 교과서에서는 진화하는 스마트 세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정리=박형수 기자

생각해볼 문제

 ‘전 국민이 파파라치가 되는 시대를 열었다’.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한 말입니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입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틱스(SA)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67.7%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2위인 노르웨이의 보급률이 55%로 10%포인트 이상 낮으니, 독보적인 1위인 셈입니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거의 모든 이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은 쉽게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고성능 기기입니다. 상대의 모습을 허락 없이 촬영해 저장하고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까지, 즉 한 편의 몰래 카메라를 제작·유포하는 전 과정이 단 5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니까요.

 많은 사람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하는 사생활 침해 중 하나가 몰래카메라입니다. 엄연한 범죄인데 그 과정이 워낙 쉽게 이뤄지다 보니 대다수 사람이 범죄라고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얼마 전 종영한 ‘몬스타’라는 한 케이블방송 드라마에서도 같은 반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SNS로 생중계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문자를 날려 남의 삶을 벌집 쑤시듯 흔들어놓고, 마음에 안 들면 ‘얘기를 더 풀어버리겠다’며 협박용으로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일도 벌어집니다. <2013년 7월 4일자 31면>

 스마트폰이 이럴진대, 안경이나 시계처럼 종일 몸에 걸치고 다니는 스마트 기기가 상용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내 정보를 허락 없이 읽고 퍼뜨리는 고성능 스마트 기기 앞에서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투명망토라도 입고 다녀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교과서는 이런 첨단 스마트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몰카, 용서받지 못할 사생활 침해 … 남 존중해야 나도 보호 받아

교과서 속 대안과 해결책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는 ‘이생규장전’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제목은 ‘이생(주인공)이 담장을 엿본다’는 의미입니다. 담장으로 가려진 세계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 너머를 훔쳐보다 최랑이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이생이 엿본 담장 너머는 엄연히 타인의 영역이지요. 다른 사람의 생활 공간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싶은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공통된 감정인 것 같습니다. 이생은 담장 너머로 연서(戀書)를 몰래 던지고, 최랑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눈에 담는 정도로 그쳤지만,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현대인은 다릅니다. 현대판 이생이라면 최랑의 모습을 몰래 촬영해 친구들과 SNS로 공유하기도 하고, 최랑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녹취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기기의 발전이 훔쳐보는 행위를 한층 더 공격적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요.

 현대인이 엿보는 일에 더 관심을 쏟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문화와 기술 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정보사회에서는 정보 기기와 서비스가 인간의 삶에 깊이 밀착돼 있어 기기의 작은 사고가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또 일상의 많은 부분이 네트워크화돼 어느 것 하나가 단절되면 연쇄적으로 불편과 피해를 겪습니다. 정보화 사회가 고도로 발달할수록 사람이 정보를 지배하고 기기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기기에 의존해 전전긍긍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직접적 인간관계보다 정보 기기를 통한 만남과 그 속의 질서에 연연하고, 작은 오류라도 생기면 삶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가 곧 권력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큰 권력은 상대가 감추고 싶어 하는 정보를 쥐고 있을 때 생겨나지요. 사람들이 점점 몰래카메라 같은 사적인 정보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정보가 절대 권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모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법과정치 교과서에서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는 천부인권에 속한다고 설명합니다. 천부인권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러한 천부인권은 국가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고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권리를 헌법상 최고의 원리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타인의 사적인 비밀을 함부로 저장하고 유포하는 일은 천부인권에 대한 침해로 용서받기 힘든 범죄라는 겁니다.

 산업사회의 인간관계가 파편적이라면,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인간관계는 서로를 감시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생활과윤리 교과서에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교제란 서로에 대한 보호·책임·이해·존경을 기반으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보호란 상대방의 생명과 성장을 돕는 것이고, 책임은 상대의 요구에 성실히 반응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경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고, 이해는 상대의 개성을 알고 포용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라도, 교과서에서 배운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만은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집필=명덕외고 김영민(국어)·최서희(국어)·한민석(사회) 교사, 청운중 유정민(기술가정)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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