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제21화 미·소 공동위원회(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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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양대국의 속셈>
공위가 결렬된 것은 예정된 것이었지만 미·소 두 나라는 결렬의 분기점을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하는 정당·사회단체의 명부에서 잡은 셈이다.
「스티코프」는 미군이 낸 협의단체명부에 대해 『남한에서 내놓은 정당 단체 명부에는 민주의원 등 6개의 극우단체가 부당하게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60만명의 구성원을 가진 전평과 30만명의 회원을 가진 여성동맹이 빠져있고, 65만명의 민청, 3백만명 이상의 농민을 대표하는 농민대중당 등이 빠져있다』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스티크프」는 또한 선언서에 서명한 정당 중에 협의 대상자격이 있는 단체는 공산당 등 3개뿐이라면서 농민대중당 등은 군정청에 의해 참가권이 박탈되었다고 비난했다.
「아널드」 장군은 물론, 소련의 이 같은 비난을 일축하고 오히려 역습했다. 즉 북한측에서 내놓은 명단에는 민주단체와 우익진영단체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스티코프」장군이 말하는 이른바 남한의 대중단체라는 것은 공산주의 극렬분자들의 파괴적 폭도집단 이라고 응수했었다.
결국 양측이 이 말을 되풀이하다가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깨진 것이었다.
「스티코프」가 그의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으로 돌아간 이튿날 「하지」장군은 특별성명형식으로 공위가 깨진 경위를 밝혔다.
『소련대표는 조선인으로서 「모스크바」 협정을 반대하는 자는 전적으로 임정에 참여치 못하도록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 대표는 그러한 제외 원칙은 조선인들에게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의사발표권을 거부하는 것이므로 반대했다』고 밝힌 다음 『회의진행의 편의를 위해 만일에 어떤 대표개인에 대해 자격문제가 일어난다면 공위에서 개별적으로 다루자고도 했으나 소련측은 이를 거절했다.
공위는 이미 6주간을 이 문제로 허송한바 있어서 임시정부를 세우자면 상당한 지연이 있을 것으로 보고 미국대표는 이 「현안」을 따로 해결시키는 동안 조선재통일의 큰 장애가 되고있는 38도선 철폐에 착수하자고 제의했다.
소련 대표는 이것을 거절했다. 거절당한 미국으로서는 이 단계에 있어서 더 다른 과제가 없으며 부득이 휴회하는 도리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나타난 경위뿐이었다.
이때는 미·소가 다같이 전후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이 「카이로」 회담에서 비롯되고 「모스크바」 협정에서 다루어진데 따라 마주앉았으나 서로 상대방의 뱃속을 알아보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을 뿐, 상대방의 뱃속을 확실히 모를 때였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지금 장충체육관이 있는 뒤쪽에 미군정청의 「버치」 중위가 큰집을 갖고 살고있었다. 「버치」는 정치장교로서 집회목적으로 큰집을 갖고 있었는데 1차 공위가 결렬되자 좌우공작을 추진, 정계요인들과 자주 만나고있었다. 이 일대의 집은 「징발가옥」으로 「DH」란 약호가 붙어 있었다. 하루는 김규식이 이 집에서 「브라운」과 만나게되었다.(「브라운」은 「아널드」 후임으로 9월23일 공위대표로 부임).
「버치」도 동석했었는데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에 「브라운」이 김규식에게 농담처럼 『「스티코프」란 녀석을 오늘 만났더니 그자가 「아예 조선을 나누어 먹읍시다」 이러지 않겠어요』했다는 것이다.
물론 김규식도 「조크」로 응수했다는 것이다. 이런 농담(?)이 있었다는 말은 당시 공위를 취재하던 설국환 노석찬(자유신문=현 「브라질」 대사) 김성용씨(동아일보=현 「말레이지아」 대사) 등 몇몇 기자들 사이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더라는 정도로 오갔다.
그러나 47년7월5일 「브라운」미군대표가 북한의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을 만나보기 위해 평양에 갔을 때 「브라운」을 따라갔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말을 또 한번 들었다는 것이었다. 근로인민당의 정치국장이던 이여성은 47년 초에 월북했는데 「브라운」이 평양에 갔을 때 이여성이 나타나 「브라운」의 수행원에게 은밀한체 하면서 『「스티코프가 말하는데 「브라운」이란 자가 조선을 아주 갈라먹자고 했다더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말은 「스티코프」나 「브라운」에게 확인해볼 길이 없었으나 남쪽에서는 「스티코프」가 갈라먹자고 했다는 것이고 북쪽에서는 남쪽의 「브라운」이 갈라 먹자고 했다는 것은 두 쪽이 모두 조선에서 쉽게 물러가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혀 분단이 장기화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서로 단독정부를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암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미 속에 정치인들은 좌우합작을 시도하고있었다. <계속> [제자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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