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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케네디 대통령을 재평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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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1961~63 재임)이 암살된 지 오는 22일로 50주년을 맞는다.

 46세에 세상을 떠난 케네디의 삶은 병으로 고통받았지만 그의 이미지는 젊음과 활기, 거기에 죽음과 관련한 극적인 드라마까지 더해졌다. 케네디의 죽음은 일종의 순교로 받아들여져 많은 미국인은 그를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놨다. 역사가들은 과도한 평가를 자제했다. 비평가들은 케네디의 때론 무모했던 성적 행동들, 변변치 못한 입법 성과, 그리고 무엇보다 언행 일치의 실패를 지적한다. 사실 케네디는 민권·절세·빈곤 감소를 역설했다.

 2009년 65명의 대통령학 전문 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JFK는 ‘가장 중요한 미국 대통령’ 순위에서 6위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 정치를 연구하는 영국 전문가들은 최근 설문조사에서 케네디를 15위에 올렸다. 이러한 설문조사는 3년 남짓 재임했던 대통령에게는 인상적인 순위다. 하지만 케네디가 정말로 임기를 다 채웠다면 무엇을 했을까?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저서인 『대통령의 리더십과 미국 시대의 창조』에서 역대 대통령들을 두 개의 범주로 나눴다. 하나는 변화형 지도자다. 이들은 중요한 변화와 관련 있는 큰 비전을 추구한다. 다른 하나는 업무형 지도자로서 이른바 운영 문제에 집중한다. 비유하자면 기차를 정시에 운행하는 데 치중한다(그러면서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케네디는 행동가이자 영감을 주는 스타일의 위대한 의사 소통자였기 때문에 분명히 변화형 대통령이다. 그는 60년 대선 캠페인에서 ‘나라를 다시 전진시키자’라는 공약을 제시했다. 케네디의 취임 연설은 희생을 호소했다.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기를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그는 ‘평화봉사단’과 ‘라틴아메리카와 함께하는 진보를 위한 연맹’ 같은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그리고 미국이 60년대 말까지 달에 인간을 보내는 계획의 초석을 다졌다.

 하지만 적극적인 행동주의와 화려한 수사에도 케네디는 이념에 치중하지 않고 신중했다. 대통령 역사학자인 프레드 그린스타인은 이렇게 기록했다. “케네디는 전망에 따라 앞서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케네디가 이념적이거나 변혁적이지 않고 신중하고 업무적이었다는 것은 중요한 상황에서 감사할 일이다. 케네디의 단기간 대통령 재임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관리와 핵 시대의 새벽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위기일발의 사건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공산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피그스만 공격 의 실패는 분명히 비난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케네디는 피그스만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소련이 쿠바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위기 상황을 신중하게 처리했다. 당시 군사지도자들을 포함한 케네디의 수많은 보좌관은 공습과 침공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당시 소련의 야전 사령관들로 하여금 전략 핵무기를 사용하게 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이후 연구로 드러났다. 하지만 케네디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당시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 협상해 핵무기 배치 계획을 철회시켰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존슨에 따르면 케네디가 아니었더라면 결과는 훨씬 더 악화됐을 것이다.

 내 견해로는 케네디는 좋은 대통령이긴 하지만 위대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그를 좋은 사람으로 만든 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능력이 아니라 복잡한 외교정책 결정에서의 신중함이었다. 그가 외교정책에서 변혁적이기보다 업무적이었다는 게 우리에겐 다행이다. 불과 취임 1000일 뒤에 그를 잃은 것은 우리의 불행이다. ⓒProject Syndicate

조셉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