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공작 꼬리털은 남자의 외제차 같은 ‘유혹 수단’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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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은 짝짓기 지능의 상징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사진은 클린턴과 르윈스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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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새 꼬리의 깃털을 바라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진화생물학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1809~1882)은 왜 이런 푸념을 늘어놓았을까. 1859년 다윈이 발표한 자연선택이론으로는 공작새의 꼬리가 진화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다윈과 같은 시대의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1820~1903)가 만든 용어인 ‘적자생존’으로 규정된다. 적자는 냉혹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들의 유리한 형질을 자신의 집단 속으로 퍼뜨리고 부적격자는 도태된다는 것이 자연선택이다.

공작새 수컷의 꼬리는 화려하고 길다. 화려한 빛깔은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고 긴 꼬리는 도망갈 때 장애가 된다. 이처럼 적자생존 측면에서 공작새 수컷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는 꼬리가 진화한 것은 자연선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윈은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 개념을 발표하게 된다.

수컷 공작이 자신의 유전적 자질이 뛰어남을 보여주는 긴 깃털을 뽐내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수컷 공작 깃털은 성적 선택서 진화
다윈은 수컷의 고환이나 암컷의 난소처럼 생식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을 1차 성징이라 부르고, 이러한 암수의 차이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남자의 수염처럼 한쪽 성에만 나타나는 2차 성징은 생식에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1871년 다윈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성적 선택을 제안한 것이다. 2차 성징은 생존경쟁보다는 성적 선택의 과정에서 진화된 형질이라는 뜻이다.

성적 선택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성적 선택은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는 수컷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일어난다. 사슴의 뿔이나 사자의 갈기는 이런 과정에서 출현한 형질이다. 사슴 뿔은 암컷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 무기로 사용된다. 성적 선택의 두 번째 형태는 수컷이 암컷의 관심을 끌어 짝짓기의 상대로 선택되는 방식이다. 이런 선택의 대표적인 보기는 공작 수컷의 꼬리이다. 암공작은 부챗살처럼 펼쳐진 현란한 꼬리 깃털에 매혹되어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요컨대 공작의 수컷이 생존에 별로 쓸모가 없는 우스꽝스러운 꼬리를 달고 다니는 것은 순전히 암컷 탓이다.

다윈에 의해 수컷 공작이 암컷에게 구애할 때 꼬리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관찰됨에 따라 공작의 장식용 꼬리는 성적 선택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다윈은 암컷이 수컷의 긴 꼬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공작 암컷이 수컷의 화려한 몸치장을 선호하는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아모츠 자하비이다. 1975년 자하비는 ‘장애 이론(handicap theory)’을 제안했다. 장애 이론에 따르면, 수컷 공작의 꼬리가 생존에 장애가 되면 될수록 암컷에게 보내는 신호는 그만큼 더 정직하다. 왜냐하면 긴 꼬리의 수컷이 장애가 있음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은 난관을 극복할 능력이 뛰어남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핸디캡으로 인한 대가를 치르면 치를수록 암컷에게 자신의 유전적 자질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더 잘 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남보다 더 길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일수록 더 좋은 유전자를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수컷 공작의 꼬리는 역설적으로 장애가 될 때 더 빨리 진화하게 된다. 신체적 핸디캡이 결국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방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자하비의 기발한 논리는 ‘정직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자하비의 장애 이론은 사람의 마음, 특히 과시적 소비욕이나 자선 심리를 설명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을 최초로 내놓은 인물은 노르웨이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이다. 1899년 펴낸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베블런은 도시의 소비자들이 비싼 사치품으로 장식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려는 성향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상대방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직접적으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과시적 소비만이 신뢰할 만한 재력의 지표가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인 제프리 밀러는 2000년에 펴낸 『짝짓기하는 마음(The Mating Mind)』에서 과시적 소비에 해당하는 생물학의 개념은 자하비의 장애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수컷의 긴 꼬리는 생존에 장애가 됨에도 짝짓기를 위해 자신의 유전적 자질을 과시할 목적으로 진화된 ‘비용이 많이 드는 신호(costly signal)’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사랑도 필연적으로 과시적 소비의 측면이 있다.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과도한 선물, 과도한 웃음 공세, 과도한 외모 가꾸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낭비는 자연선택이론의 적자생존 관점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일 따름이므로 성적 선택 이론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다고 밀러는 주장한다.

2009년 5월 펴낸 『소비(Spent)』에서 밀러는 미국 사회의 소비문화를 성적 선택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밀러는 미국인들이 지방대보다 10만 달러나 더 비용이 드는 하버드대의 졸업장을 따내려고 안달하고, 보통 자동차보다 2만5000달러나 더 비싼 BMW를 선호하는 까닭은 짝짓기 승부에서 유리한 입장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버드대 졸업장이나 BMW는 수컷 공작의 장식용 꼬리인 셈이다.

르윈스키 사건은 짝짓기 지능 연구 대상
밀러는 『짝짓기하는 마음』에서 사람이 기부를 하거나 선심을 베푸는 자선 심리를 과시적 소비 개념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사업가인 존 록펠러(1839~1937)는 돈을 벌 때는 피도 눈물도 없이 악착같았지만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렇다면 록펠러와 같이 자수성가한 인물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물질적 보답도 기대하기 어려운 불특정 다수를 위해 고생해서 번 돈을 선뜻 기부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밀러는 자선 심리가 진화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록펠러 재단은 록펠러에게 공작새의 꼬리와 같다”는 비유를 사용했다. 인간의 자선 행위가 성적인 과시 본능에서 진화되었다는 뜻이다. 자선 행위를 또 다른 형태의 과시적 소비로 본 셈이다. 2007년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밀러는 자선 행위를 일종의 ‘비용이 많이 드는 신호’라고 분석하고, ‘노골적 자선(blatant benevolence)’이라고 명명했다. 노골적 자선은 ‘경쟁적 이타주의(competitive altruism)’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인간은 가족을 위해, 또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이타적 행동을 하지만 사회적 평판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남을 도울 줄도 안다는 것이 경쟁적 이타주의이다.

밀러와 함께 성적 선택 개념으로 인간의 지능을 분석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글렌 게어이다. 2006년 게어는 ‘짝짓기 지능(mating intelligence)’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인간의 짝짓기 전략, 성적 욕구, 남녀의 애정 형성 등에 적용되는 인지 과정’을 의미한다.

짝짓기 지능은 사회지능 및 정서지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회지능은 타인을 믿음과 욕망을 가진 존재로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한편 정서지능은 타인의 정서를 지각하고 이해하여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보탬이 되도록 활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2007년 게어는 격월간 ‘현대 심리학(Psychology Today)’ 1월호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짝짓기 지능을 측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남녀 각각에 대해 24개 항목의 설문을 작성하도록 한다. 가령 남자에게는 “나는 아름다운 여자 여러 명과 잠을 잤다” 또는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아내는 재주가 뛰어나다” 등의 항목을, 여자에게는 “내 또래의 여자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또는 “남자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섹스를 하면 그가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같은 항목을 제시한다. 각 항목에 1점이 주어지므로 만점은 24점이다. 평균적으로 남자는 12.3점, 여자는 10.5점을 획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테면 남자가 여자보다 짝짓기 지능이 다소 높은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2007년 7월 게어와 밀러는 짝짓기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논문 16편을 엮은 『짝짓기 지능(Mating Intelligence)』을 펴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짝짓기 지능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례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을 손꼽았다. 클린턴은 1995년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낮에 임시 직원인 모니카 르윈스키와 야릇한 성행위에 탐닉했는데, 이 사건이 1997년 12월 공개되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1995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49세, 부인 힐러리는 48세, 르윈스키는 22세였다. 르윈스키는 젊어서 자식을 여러 명 낳을 수 있을 테지만 힐러리는 폐경이 임박한 상태였다. 두 여인은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오로지 임신 능력 측면에서만은 르윈스키가 힐러리를 압도한 셈이다. 요컨대 중년 사내가 폐경기를 앞둔 아내 몰래 풋풋한 아가씨와 놀아난 사건이기 때문에 클린턴은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렵지만 짝짓기 지능의 연구 대상이 될 만한 인물로 여겨진다.

2013년 1월 게어는 『짝짓기 지능 해방되다(Mating Intelligence Unleashed)』를 펴내고, 짝짓기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으므로 미국의 학교에서 성교육 대신 짝짓기 교육을 할 것을 주문했다. 청소년들에게 생식기관의 구조, 콘돔 사용법, 성병의 종류 따위를 가르치는 성교육도 물론 중요하지만 짝짓기에 대한 이해 없이 섹스만 배우는 것은 불충분하므로 짝짓기 심리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짝짓기 교육을 통해 이상적인 짝을 만나는 방법을 알게 되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게어는 이 책의 끄트머리에서 “짝짓기 지능이 높은 남자일수록 여성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강간하거나 또는 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낮아진다”면서 “짝짓기 지능이 세상을 구한다”는 담대한 결론을 내렸다.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50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 『이인식의 멋진 과학』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inpla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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