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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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이 초복, 이제부터 복더위에 접어든다. 보신탕이 팔리는 계절이다. 사기에 보면 『위덕공 2년에 비로소 삼복제사를 지내는데 성안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를 막았다』라 적혀있다.
더위를 잊는데도 얼큰한 보신탕이 제일이라 한다. 이열치열이란 이치 때문에서인가 보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개를 잡아야 했는지?
농사에 개는 소만큼 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더위를 견디는 힘이 개에 제일 많아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지땀을 흘리며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 길게 늘어져 낮잠을 일삼는 개가 밉살스러워 보였기 때문일까? 그래서 『복날에 개 패듯 한다』는 말까지 나왔나보다.
복더위와 개와의 관계는 서양에서도 있다. 영국의 성서기는 7월 한 달과 8월 초순이다. 이 동안은 Dog day라고 한다. 개의 별이란 별명을 가진 「시리우스」(Sirius)성이 태양과 함께 출몰하는 동안과 일치한다. 그래서 개의 시기라고 부르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이 말은 좋은 뜻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I·테일러」의 라마사를 보면 『로마의 정신적 전제주의의 「도그·데이즈」 중에…』라는 표현이 있다. 이때는 악몽시대라는 뜻으로 썼다.
이 동안은 또 노망스런 계절(Silly season)이라고도 한다. 1년 중 가장 「뉴스」거리가 없어 너절한 기사들만으로 신문이 메워지는 때라는 뜻에서이다.
아무리 이처럼 지겨워도 서양사람들은 개를 잡지는 않았다. 개처럼 사람에게 정을 쏟는 동물도 없다. 그런 개를 잡아먹던 우리네 부조보다 서양사람들이 더 정이 두터웠다고 볼 수는 없다.
그저 굳이 개를 잡자 않아도 좋을 만큼 쇠고기가 풍족했을 뿐이다. 만일에 마음놓고 육식을 할 수만 있었다면 우리네 부조도 바둑이를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신탕이란 가난의 상징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보신탕을 마련해야 했던 우리네와 그러지 않아도 좋았던 사람들의 차이는 단순히 생활양식에만 반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네의 의식과 발상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는 공교롭게 복중이 장마와 겹친다. 복더위는 그만큼 잊게된다. 그 대신 딴 시름이 겹친다.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처녀의 눈물이 비오듯한다』는 옛말도 있다. 대추열매도 그렇지만 장마철의 위생도 걱정이다. 이렇게 걱정이 떠나지 않는 것도 보신탕이 키운 습성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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