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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립·진은숙과 수학콘서트 … "돈 내고 입장한 사람 많아 놀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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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된 김민형 박사. 그는 “학교에서 배운 수학을 사회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사진 인터파크]

“우리나라의 ‘수학 포기자’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웬만한 나라의 아이들보다 수학을 잘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김민형(50) 교수의 말이다. 주로 해외에서 교수 생활을 했던 그가 최근 고국을 잇따라 찾으며 수학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학 콘서트 ‘KAOS(Knowledge Awake On Stage)’를 지난해 시작했다.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박형주 포스텍 교수, 인터파크 이기형 회장과 함께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한 해 두 차례 열리는 KAOS는 시각적 영상과 함께 다양한 전문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공연 같은 강의’다.

 지난 7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3회 강연을 마친 그를 만났다.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받은 진은숙 작곡가가 이날 함께 초대됐다. 2회 강연엔 꿈의 신소재 ‘그래핀’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가 초청된 바 있다. 모두 김 교수가 섭외한 이들이다.

 이날 공연은 단순히 수학에 대한 설명을 뛰어넘었다. 진은숙 작곡가는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가 기하학적 원리를 도입해 만든 음악을 들려주며 음악과 수학이 조화를 이룬 사례를 미디어 아트로 선보였다. 객석이 가득 찼다. 3회 공연에선 입장료를 받았는데도 만석이다.

 김 교수는 재작년 한국인으론 처음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에 임용됐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1994년 증명한 세계적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 프린스턴대 교수가 2011년 옥스퍼드대로 옮기면서 그를 추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된 이후 남은 산술대수기하학 분야 난제를 풀 수 있는 혁신적 이론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를 거쳐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옥스퍼드대에 가기 전 이미 미국 애리조나대·퍼듀대 교수를 거쳐 영국 런던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2012년 호암상을 받은 그는 올해부터 초빙 석좌교수로 서울대에서도 3개월간 강의를 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포스텍에서 석좌교수로 강의한 바 있다.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한국은 이미 수학 강국”이라며 “‘수학 포기자’라는 학생도 웬만한 나라 아이들보다 낫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에게 ‘왜 수학 대중화인가’를 물었다. 그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리알 유희』를 언급했다. 학문이 일상생활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대학 주위에서 살았고 늘 공부하는 학생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에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었어요. 거기 나오는 학자들은 굉장히 고귀하게 사는데 수학·음악만 공부하고 역사 공부도 안 합니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자퇴한 후 홈스쿨링을 했던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영문학자인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다.

 - 중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다.

 “당시 신장염 때문에 오랫동안 아팠다. 휴학을 오래 하게 됐는데 그 이후로 학교로 돌아가지 않게 돼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것 같은데 나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 아버지인 김우창 교수는 그리 엄격하진 않았나 보다.

 “글쎄 그 점은 아버지께 직접 물어보셔야 할 것 같다. 학교는 안 갔지만 혼자서 책도 보고, 음악도 자주 들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갔던 것 같다. 그때 수학 과외는 좀 받았다.”

 - 대학 전공으로 수학을 택한 이유는 뭔가.

 “처음엔 철학을 하려고 했다. 서울대 수학과 들어가기 1년 전에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갔다. 철학과는 거의 다니지 않았고 다음 해 수학과로 다시 들어갔다. 처음엔 물리학과를 가려 했는데 떨어지고 2지망인 수학과에 붙었다. 여러 상황이 겹쳐 택한 것이긴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수학이 나에게 가장 잘 맞았던 것 같다.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내가 수학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 나를 택한다고 표현하는데 그런 사례에 내가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과학기술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다.”

 - 뭐라고 하면서 과학을 강조했나.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 철학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학문이지만 과학적인 이해가 현대 세계에서는 근본이지 않나. 그런 때문인지 우리 형제들은 과학 쪽 공부를 많이 했다. 4남매인데 형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생물학을 하고 동생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계산과학을 하고 있다. 누나는 미국에서 법을 공부했다.”

 - 아버님의 교육방침이 있었나.

 “다른 형제들은 자퇴를 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 교육방침이라는 것이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학문을 하는 게 좋다고 강조하기는 했다. 다른 직장도 좋지만 공부를 계속 하기를 원했다. 어릴 적보다는 지금 오히려 더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웃음). 요즘엔 이런 생각도 해보면 좋지 않겠냐며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한다.”

 - 수학 대중강연을 시작했다.

 “일종의 콘서트다. 이름을 ‘KAOS(Knowledge Awake On Stage)’라고 정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일상 속 과학’에 대해 들려주는 거다. 앞으로 스포츠 분석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부를 거다. 지난해 초 포스텍 박형주 수학과 교수와 인터파크 이기형 회장이 과학대중화 사업을 하자고 해 시작한 거다. 강의를 공연장에서 하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대학 강의랑 달리 시각적인 효과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관중들과 소통하는 것도 신선했다.”

 - 수학 콘서트라는 형식이 독창적으로 보인다.

 “내가 만들었다기보다 우리나라 문화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배우고 영감을 받고 싶어 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사람이 없을 거라 걱정했는데 3회째 강연에는 돈을 받고 했는데도 자리가 가득 찼다. 외국에선 누가 강의를 하더라도 일반인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 왜 시작했나.

 “언제부턴가 학문 공간을 더 넓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이들이 뭔가를 배우는 데 관심이 있고, 이들에게 우리 학자들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생만 돼도 미적분처럼 어려운 수학을 익히고 있다. 이들이 모두 수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수학 실력을 낭비하지 않고 활용할 방법을 찾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는 그런 일을 하는 수학재단을 만들고 싶다. 회사 다니면서도 경영 회계 등을 공부하듯이 수학도 그렇게 가르칠 수 있지 않겠나.”

 - 수학 하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나라 학생들 수준이 높아서 그럴 거다.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수학 수준이 높고 바라는 바가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수학 포기자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웬만한 나라 아이들보다 수학을 잘한다(웃음). 만약 수학 교육을 안 시킨다고 하면 그 시간에 더 창의적으로 잘 지내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을까.”

 - 수학을 어렵다거나 껄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예상 밖의 답변이다.

 “그런 점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배운 교육이 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거다. 미국이나 영국에 주로 살다가 우리나라에 오면 잘되고 있는데 괜스레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수학 강국이 될 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 이들이 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누가 봐도 이미 수학 강국이다. 연구할 때 논문 인용수도 높고 교육 수준도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질문을 하는 거다. 이미 강국인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문제도 그런 것 같다. 항상 어딘가 굉장히 좋은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런 것을 바라면서 스스로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 즐겁게 수학을 하는 비결 좀 가르쳐 달라.

 “수학에서 즐거움이나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어렵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쉬운 것 같다. 창의적인 내용을 가르치려면 기초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명문 대학 학생들도 유리수 계산이나 간단한 방정식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창의적인 것을 가르치려고 하다 보면 이미 기본적인 문제에서 막혀 버린다.”

 - 우리나라 수학 연구 수준은.

 “상당히 발전했다. 대략 미국과 유럽 몇 개국에는 아직 뒤처지지만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 우리나라에선 아직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을 받은 수학자는 없다.

 “학생들의 수준은 높은데 나 같은 수학자의 수준이 아직 따라가지 못한다(웃음). 연구중심 대학이 만들어진 지가 그리 오래지 않은 것도 이유다. 필즈 메달을 주는 세계수학자 대회는 4년마다 열린다. 내년엔 한국서 열린다. 한국에선 필즈 메달을 받는 것이 어렵겠지만 다음번(2018년)이나 그 다음번(2022년) 대회에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수준에 있는 젊은 수학자를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대여섯 명은 된다.”

 - 김 교수도 가능한가.

 “나는 나이가 많고 능력도 안 돼서(웃음).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능성이 있다.”

 그는 최근 소수(素數)에 대해 설명하는 대중교양서 『소수 공상』을 펴내기도 했다. KAOS 다음 공연은 내년 3월에 열린다.

글=이상화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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