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서 싹튼 닉슨·언론 불화 10년|「뉴요크·타임스」·행정부 갈등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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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뉴요크·타임스」지가 보도한「미국 대 월 정책 수립 과정 사」에 대한 닉슨 행정부의 민감한 반응은 사실 60년 닉슨씨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고「존·F·케네디」에게 패한 때부터 계속되어 온 닉슨 대 언론계의 신랄한 다툼의 최신판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결의 계기가 된 극비 문서의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닉슨」대 언론이 겪어온 티격태격 과는 비교가 안될 어마 어마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문서는 지금까지 월남전 확 전의 책임을 월맹 측 도발에 두었던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리고 월남전은 미국의 은밀한 침략의 결과라고 주장해 온 월맹과 반전 단체의 해석을 그대로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당장 논에 띄는 것으로「통킹」만 사건이 있기 6개월 전에 이미 미국은 월맹 연안에 PT「보트」등을 보내 파괴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 이는「통킹」만 사건으로 첫 북 폭 이 불가피했다는 존슨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실이다.
60년 당시「닉슨」씨는 자신의 유세에 비판적인 기자에 대해 신경질적 반응을 곧잘 냈으며 때로는 기자들과의 면접을 거부했었는데, 케네디에 패배했을 때 그는 패인 중에는 자기를 잘못 묘사한 기자들의 편견도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년 후 그가「캘리포니아」주지사로 출마했다가 다시 낙선했을 때 마지막 기자 회견을 열고 그가 기자들에게 내뱉은 냉소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는 그때『이제 기자 여러분들 시원섭섭하게 되었습니다. 늘 발길로 차던「닉슨」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라고 말했었다.
그러던「닉슨」이 다시 나타났을 때 언론계에서는 상당한 불안을 느꼈다. 68년의 선거기간 중『「닉슨」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동원했던「뉴요크· 타임스」지와 닉슨 행정부의 충돌은 그러나 당장 나타나지 않았다.
충돌은「미디어」중에서도 약한 측인「텔리비젼」쪽에 먼저 겨누어 졌다.
69년 가을「애그뉴」부통령의 소위「디모인」연설이 그 첫 포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애그뉴는『유권자의 투표라고는 한 장도 얻어보지 못한 주제에 저희들끼리 지식인, 지식인하고 불러대는 연약한 속물들』이라고, 주로 워싱턴과 뉴요크에 모인 주요「텔리비젼」네트워크 요원들을 욕했다. 애그뉴는 이 자리에서, 행정부 고위 책임자들이 수개월 동안 애써서 입안한 정책을 대통령이 발표하면 미디어는 단 시간 안에 이를 부정해 버린다고 비난하면서 미디어의 논평 태도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신문과는 달리「텔리비젼」은 3년마다 연방 통신 위원회의 인가를 갱신해야되기 때문에 행정부 고위 책임자의 이 같은 비난은 즉각적인 영향을 입게 되어 있다. 이때부터 시작된 행정부의 음성적 압력은「텔리비젼」의 활동을 눈에 뛸 정도로 약화시켰다는 게 미국「저널리즘」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문에 대한 행정부의 압력은 70년 4월, 샌프란시스코 주재「뉴요크·타임스」특파원 「얼·콜드웰」에 대한 법원의 취재 노트 제출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은 그때 재판중인「블랙·팬더」용의자에 대한 증거로서 이들과 앞서「인터뷰」를 한 콜드웰 기자의 취재 노트를 요구했던 것이다. 뒤이어 텔리비젼에 대해서도 각종 사건 취재 때 촬영한「필름」과 취재 노트를, 비록 그것이「뉴스」보도에 사용되지 않은 것이라도 제출하라는 법원 명령이 산발적으로 내려졌다.
이에 놀란 미국의 언론계는 이와 같은 명령이 자유로운 취재에 불가결한 취재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여하한 법원 명령에도 불복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닉슨 대통령의 측근인「존·미첼」법무장관은『증거를 얻기 위한 모든 방법이 불가능할 경우만 취재 노트의 제출을 명하겠다』고 양보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일반 언론인의 대 정부경계심은 날카로워 졌다.
언론 대「닉슨」행정부 충돌의 최근 예로는 CBS가 4월에 방송한「다큐멘터리」『펜터건을 파는 방법』이라는「프로」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미 국방성이 연간 10여 억 달러를 소비하면서 자체「피아르」를 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이 프로는 부분적으로 허위라든가 조작되었다는 비난을 북방 성으로부터 받았으며 닉슨 행정부에 호의적인 하원군사위로부터는 이 프로를 위해 촬영한 필름을 모두 제시하라는 명령까지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복잡한 대치 관계를 배경으로 한 이번「뉴요크·타임스」대「닉슨」행정부의 충돌은 관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언론 대 행정부간의 상징적 대결의 양상을 분명히 띠고 있다. 그러한 상징성은 양쪽 모두에게 결과에 대한 중요성을 높여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상당히 오랜 기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장두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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