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정년 연장의 명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

“뒷머리를 된통 얻어맞은 느낌이다.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이렇게 후다닥 처리할 줄 몰랐다.” 22일 한국노동경제학회가 연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정책토론회에 나온 학자와 노동계, 경영계 관계자들은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60세 정년법(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 퇴직 연령이 평균 53세인 현실에서 근로자로선 환영할 만한 법이다. 하지만 기업은 충격파를 가늠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호성 상무는 “통상임금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최소 90조원의 추가 노동비용을 기업이 안아야 할 것”(연세대 이지만 교수)이란 진단도 있었다.

 정년 연장의 혜택은 대체로 고령자가 많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근로자에게 집중된다. 정년 연장에 따른 생애소득이 대기업 근로자를 중심으로 확 늘어난다는 얘기다.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근로자 간의 소득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일본은 1970년대 정년 연장 논의를 시작해 94년에야 60세 정년을 의무화했다. 30여 년간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등 각종 준비를 마치고서다. 그동안 관련 법은 ‘60세 정년 노력 의무화→정년 후 재고용 노력 의무화→60세 정년 의무화’로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별다른 노사정 대화나 충분한 준비 기간도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정년을 연장한 이유가 뭘까. 정부는 “저출산과 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한다. 다른 속내는 없을까. 정년 연장에 따른 가장 큰 수혜자는 정부일 수 있다. 복지비용과 같은 정부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소득세 등 세수는 늘어난다. 가뜩이나 각종 복지 정책에 따른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부로선 정년 연장이 돌파구인 셈이다. 국가의 재정 부담을 기업에 전가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근로자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유럽 국가는 정년을 연장한 뒤 연금 납부와 수급 연령을 상향 조정했다. 한국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청년에게 돌아갈 질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대 갈등에 대한 걱정이다.

 그래서 정책토론회에 나온 학자들은 “정부가 솔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은 정년을 연장할 때 “재정 부담 때문”이라고 국민에게 고백하고 적절한 후속 조치를 취한다. 우리 정부도 ‘법이 통과됐으니 노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방관적 태도를 취하기보다 지금이라도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분담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노사와 함께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