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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7일 영업, 무료 상담 훈훈한 금융사, 한국엔 왜 없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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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호 23면

질문: 저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고 매주 460달러의 원리금을 갚고 있습니다. 원리금 상환을 잠시 중단하는 ‘주택담보대출 방학’이라는 게 있다면서요? 최장 몇 개월간 일시 중단할 수 있나요? 원리금 상환을 넉 달간 중단하면 이자가 얼마나 더 늘까요?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들려주는 ‘경영의 한 수’ ⑦ 글로벌 사례로 본 ‘금융소비자 중심주의’

답: 일정 기간동안 원리금이 연체 없이 상환되어야 하는 등의 몇 가지 조건을 갖추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남은 대출 기간에 대한 상세 정보가 있으면 늘어나는 이자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아래 번호로 전화를 걸면 자세한 상담이 가능합니다.

신문 지면의 ‘재테크 상담실’ 같은 곳에서나 접할 법한 글이다. 이 글은 지난 14일, 캐나다의 토론토 도미니언 은행(TD뱅크)이 운영하는 ‘TD가 도와드립니다’(TD helps)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접속해서 자신의 금융과 관련된 궁금증이나 고민을 올리면 은행 전문가가 답글을 달아준다.

‘주택대출 방학’ 상담 요청 글은 지난 11일 오후 8시11분에 올라 왔고 답글은 8시20분에 달렸다. 거의 실시간 답변인 셈이다. 답변을 한 ‘마르코 비도비치’는 TD뱅크 직원으로 투자 전문가다. 마르코 외에도 경력 18년의 주택담보대출 전문가, 경력 10년의 투자 전문가, 경력 15년의 개인금융 전문가 등 TD뱅크 직원 4명이 팀을 이뤄 올라오는 질문마다 답변을 한다.

이 은행은 2008년부터 ‘TD가 도와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많은 사람이 갑자기 직장을 잃었다. 과도한 대출로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대응법을 알려주거나 실직자의 자립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에드 클라크 TD뱅크 CEO는 “고객이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우리 은행이 한결같이 곁에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위기가 잦아들고 북미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는 일반적인 금융 상담으로 운영 범위가 넓어졌다. 2009년 사이트 개설 후 지금까지 16만 명이 방문했고 3만 명이 도움을 받았다.

이 홈페이지는 TD뱅크가 금융소비자 중심 은행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선보인 하나의 실천사례다. 지금 이 은행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다른 은행이 문을 닫았을 때도 영업하는 은행, 주 7일 문 여는 은행’으로 인식된다. 은행 지점에 가면 누구나 공짜 커피와 쿠키를 먹을 수 있다. 영어가 서툰 이민자에게도 친절하다는 좋은 평판도 얻었다. 이 은행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중의 머릿속에 이렇게 각인되기까지 긴 세월이 필요했다.

늪에 빠진 한국 금융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이런 ‘훈훈한 금융사’ 얘기는 낯설다. 동양그룹 사태 때문에 많은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보게 된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 과정에서 동양그룹이 계열 증권사에 채권을 할당했다는 의혹, 일부 증권사 직원이 불완전 판매를 했다는 정황이 포착돼 소비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지금 한국 금융업은 깊은 침체기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금융업은 심한 레드오션으로 변했다. 5년간 성장은 둔화됐고 수익성은 나빠지고 있으며 규제는 갈수록 강화됐다.

뱅커지(誌) 선정 세계 100대 은행에 든 여섯 개 한국 은행의 최근 5년간 평균 총자산 대비 이익률(ROA, 총자산 대비 순이익 비율)은 0.2~0.09% 수준으로, 1% 넘는 곳이 한 곳도 없다.

은행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순이자마진(Net interest margin, 은행의 자산 운용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차감해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도 악화 일로다. 올 2분기 국내 은행의 평균 순이자마진은 1.88%로 금융위기 때였던 2009년 2분기의 1.72% 이후 가장 나빴다.

‘미래’에 대해 값을 쳐주는 곳인 주식시장에서 금융업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올해(7월 말, KRX100 기업 기준) 전체 시가총액은 2007년에 비해 160% 커졌는데 같은 기간 금융업종 시가총액은 30%가 쪼그라들었다.

환경은 변하는데 여전히 한국 금융사는 뚝 떨어진 손익을 어떻게 하면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에만 온통 초점을 맞춘다. 직원은 영업점과 자신에게 ‘떨어진’ 성과 목표를 달성하기에 급급하다. 직원은 고객을 ‘형식적인 친절’로만 대응해 깊은 신뢰관계를 맺지 못한다.

한마디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비용 구조를 유지하면 앞으로 5년 후 금융기업이 창출하는 이익은 반 토막이 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게임의 룰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닥칠 게임의 룰 차원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는 금융사가 금융소비자와 진정한 신뢰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지금 신뢰는 바닥 수준이다.

두 번째는 스마트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서비스 모델을 혁신하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금융업의 존재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이 아닌, 부가가치를 진정으로 창출하는 ‘금융기업’으로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다 바꿔라, 금융소비자 중심으로
세 가지 중에서도 ‘금융소비자 중심’(Customer centricity)을 실천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리 금융업이 규제산업이라고 해도 소비자 신뢰를 잃고 외면당하는 기업이라면 살아남을 길은 없다. 글로벌 금융사들 사이에서 금융소비자 중심주의가 이미 큰 화두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업무를 금융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는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단편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최고경영자의 강력하고 흔들림 없는 변화 의지가 중요하다. 명확한 중장기 실행 과제가 주어져야 한다. TD뱅크의 변신은 CEO가 무려 10년간 앞장서 변화를 주도했기에 가능했다.

금융소비자 중심을 구현하려면, 우선 소비자의 피부에 와 닿을 만한 핵심적인 테마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TD뱅크는 ‘아메리카에서 최고로 편리한 은행이 되자(America’s most convenient Bank)’라는 슬로건을 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쳐야 할까를 하나씩 정의해 약속해놓고, 실현 가능한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면서 믿음을 얻었다.

영국의 낫웨스트(NatWest)은행처럼 아예 ‘고객헌장’이라는 공약을 내건 곳도 있다. 이 은행은 소비자가 불편해하는 사항을 조사하고 그중에서 고칠 수 있는 사항 14개를 뽑아 목록을 만들었다. 이를 일간지 등에 광고로 알렸다. “영업 시간을 늘리겠다. 5분 이내에 고객을 응대하겠다.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신속하게 돕겠다”처럼 금융소비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약속이었다. 6개월이 흐른 후 외부 감사기관을 통해 14개의 공약 중 몇 개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점검을 받았다. 지극히 구체적인 접근으로 소비자 마음을 조금씩 얻고자 한 것이다.

고객 만족도로 직원 성과 평가해야
변화가 조직 전체에 스며들면서 조직원을 모두 움직이려면 임직원 인사·성과 보상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TD뱅크 에드 클라크 행장은 “저를 포함한 모든 TD뱅크 직원의 월급은 고객이 우리 은행에 얼마나 만족했는지에 따라 정해진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연말 보너스 등이 고객 만족도와 관련된 성과 평가 결과에 따라 지급됐다. 일반적인 은행원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수의 고객과 자산을 유치했나, 보험이나 카드를 얼마나 판매했나 등을 중심으로 평가되는데, TD뱅크는 이런 관행을 과감히 깼다.

노력은 성과로 나타났다. TD뱅크의 자산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146% 늘었고 순익은 342% 급증했다. 리서치 회사인 JD파워 조사에서 2006~2011년 6년간 캐나다 은행 중 고객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비금융 제조기업으로부터도 배워야 한다. 이를테면 애플은 성과 중심으로 매장을 평가하되 매장 직원은 고객 만족도로만 평가하는 ‘투 트랙’의 성과 관리 체계를 운영한다.

사실 ‘소비자를 중심에 둔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리기 쉽다. 기업이 돈 벌어주는 고객을 우선한다는 건 이발사가 머리를 잘 깎는다거나 요리사가 요리를 잘한다는 것처럼 마땅히 그래야 할 일 아닌가?

문제는 정작 소비자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거꾸로 말해 작더라도 정말 차이를 느끼면 소비자는 이를 즉각 알아채고 기꺼이 그 기업의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된다는 뜻이다. 한국 금융사가 저수익·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해법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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