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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 끝내면 자연의 ‘관심’도 끝 … 그저 늙어갈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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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호 25면

델 콘테(Jacopino del Conte)가 1535년께 그린 ‘늙은 미켈란젤로’. [사진 위키피디아]

20세기 최고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1908∼2009ㆍ아래 사진)는 1998년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프랑스 한림원 겸 대학)가 마련한 그의 90세 기념 행사에서 늙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대식의 'Big Questions' <15> 노화란 무엇인가

“몽테뉴는 ‘늙음이 우리를 매일 조금씩 소멸시켜간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여기 서 있는 실제의 나는 더 이상 ‘레비스트로스’의 반에 반도 안 됩니다. 하지만 가상의 ‘레비스트로스’는 활기 넘치는 아이디어로 꽉 찬 여전히 완벽한 존재입니다. 가상의 나는 새로운 책을 구상하고 첫 장을 쓰며 실제의 나에게 말합니다. ‘자, 이제 자네가 계속 쓰게나.’ 그러나 더 이상 능력이 없는 ‘실제의 나’는 ‘가상의 나’에게 말합니다. ‘아니, 이건 자네 몫이야. 여전히 전체를 볼 수 있는 건 자네뿐이라고.’ 남은 인생 동안 나라는 존재는 이 둘의 낯선 대화들 사이에 살게 될 겁니다. ”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처음은 항상 같다. 하나의 세포는 둘이 되고, 둘은 넷, 그리고 넷은 여덟이 된다. 몸이 만들어지고 피가 흐르고 뼈가 생긴다. 수천억 개의 세포가 만들어져 대뇌피질을 향해 이동한다. 신경세포들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 자극들. 마치 여름 밤하늘을 덮는 천둥번개 같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무질서의 신호들 사이에 점차 패턴이 보인다. 반복된 패턴은 의미가 있고, 반복되지 않는 패턴엔 의미가 없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엄마의 자궁이라는 작은 우주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약 9개월간의 포근함과 평화. 왜 행복은 영원할 수 없는 걸까?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어느 날. 우리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한다. 밀어내려는 자연의 힘과, 존재의 본거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우리. 거친 숨, 붉은 피, 이해할 수 없는 혼돈의 신호들. 먼 나중에야 ‘광자’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알게 될 그 무언가가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망막에 무시무시한 천둥번개들을 만들어낸다. 모든 게 너무 밝고 시끄럽다. 원하지 않게 만들어진 우리는 ‘세상’이라는 또 하나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은 갑이고 인간은 을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 세상은, 우리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명령하기 시작한다. 먹어야 한다. 걸어야 한다.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성공해야 한다고.

직장을 얻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산다. 원치도 않은 세상에 태어나 인생의 게임 법칙에 휘말려 살던 어느 날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빠지기 시작한다. 배가 나오고 주름이 생긴다. 가슴이 처지고 팔에 힘이 없다.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고, 긴 문장을 읽기가 어려워진다. 델 콘테가 그린 ‘늙은 미켈란젤로(큰 사진)’처럼 말이다. 이제야 겨우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세상의 질서는 또다시 서서히 무질서의 암흑으로 사라져간다.

다음 세대 위해 늙고 죽어 자리 비워라?
늙음이란 무엇일까? 자연은 왜 그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투자해 만들어 놓은 우리를 다시 소멸하게 하는 것일까? 단순히 오래 사용해 망가지는 기계와 우린 다르다. 생명체는 망가진 부위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시에 긁힌 손이 치유되고, 잘린 도마뱀의 꼬리가 다시 자라듯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이거다. 왜 생물학적으로 충분히 회복하고 치료될 수 있는 몸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치료되고 회복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늙고 죽어 자리를 비워주어야 다음 세대가 번창할 수 있어 노화가 존재한다는 19세기식 아이디어는 물론 난센스다. ‘다음 세대가 번성해야 한다’라는 ‘건전한 사회적 가치’는 자연에 아무 의미가 없다.

진화생물학자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가 말했듯 생명체의 의미는 진화적 차원에서만 설명된다. 진화의 핵심은 번식을 통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기 때문이다. 미래 후손(고로 우리들의 유전자)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유전적으로 더 우월한 또는 최대한 많은 파트너를 확보해야 한다. 수컷 공작이 무겁고 긴 꼬리를 세우며 힘을 자랑하듯, 인간 수컷들은 고급 승용차로 자신의 유전적 우월함을 표현하려 한다. 인간에게 수퍼 갑인 자연의 명령은 간단하다. 더 많이 번식하려면 성공해야 하고, 성공하기 위해선 남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먹고 마셔야 한다.

성장의 반대인 노화. 그렇다면 진화적 관점으로 노화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어쩌면 노화의 비밀은 ‘진화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화적 무의미’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노화 증세는 20대 후반 또는 30대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그러나 번식은 10~12세만 돼도 가능하다. 더구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인류의 수명이 25~30세 정도만 돼도 큰 문제 없어 보인다. 평균 수명이 30세뿐인 뉴기니의 많은 부족도 조상으로부터 배운 전통과 문명을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주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치명적 질환을 만들어내는 특정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만들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확률은 매우 낮다. 유전자를 가진 자는 대부분 번식하기 전에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 같은 노인성 질환을 만들어내는 유전은 다르다. 번식이 끝난 후에야 영향을 주는 병이어서 노인성 질병들은 진화적으로 중립적이다. 노인성 질병이 있건 없건 번식확률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노화는 근본적으로 불가피한 진화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노화는 ‘자연의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뿐이다.

또 다른 예로 칼슘을 생각해 보자. 성장기에 칼슘은 중요하다. 튼튼한 뼈를 가져야 생존과 번식확률이 높다. 하지만 많은 칼슘은 노인성 관절염의 원인이기도 하다. 동일한 원인이 정반대의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튼튼한 뼈를 가진 어린이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노인. 그렇다면 칼슘 용도를 좌우하는 유전적 메커니즘은 어느 쪽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답은 물론 정해져 있다. 어린아이의 발달은 진화적으로 의미 있지만, 노인의 삶은 진화적으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30세에 죽었어야 할 인간이 70년 더 사니…
바람둥이 남자에게 옛 애인이 무의미하듯, 자연에게 번식을 끝낸 나이의 인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성장과 노화는 ‘지나친 관심’과 ‘얄미울 정도의 무관심’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자연의 결과물이다. 어른이 되기 싫은 피터팬은 자연의 관심에서 자유로워지려 했고, 늙지 않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도리안 그레이(Dorian Gray)는 자연의 무관심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150주년 탄생 기념으로 이탈리아 정부가 2011년 출간한 스베보(Italo Svevo) 기념우표.

그래, 나이 먹은 나는 자연에 진화론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치자.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망가져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냥 구경하며 우울해하라는 것인가? 아니, 조금 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겠다.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지 못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만간 100세 시대를 기대한다. ‘자연적’이라면 30세에 죽었어야 할 우리들이 과학과 기술 덕분에 70년을 더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진화하는 자연은 여전히 늙어가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하지만 자연의 무관심은 우리에게 뜻밖의 자유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던져져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성공하려고 발버둥치도록 프로그램돼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하지만 노년은 다르다. 자연이 무관심하기에, ‘노년’이라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년엔 수퍼 갑인 자연이 요구하는 정답이 더 이상 없는 만큼, 우리는 우리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꿈과 여유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걸작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실제 인물이었던 이탈리아 작가 에토레 슈미츠(Ettore Schmitz). 그는 항상 작가가 되길 꿈꿨다. 하지만 사업가가 된 그는 먼 훗날 재력가가 된 중년에 가서야 ‘이탈로 스베보”(Italo Svevoㆍ위 사진)’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늙은 신사와 아름다운 소녀』라는 짧은 작품에 등장하는 성공한 어느 신사. 이미 사랑을 포기했어야 할 늙은 나이에 신사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아름다운 여자를 그리워하는 마음. ‘먼지보다 보잘것없는 나’를 ‘우주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사랑해 주는 그이를 만날 때의 놀라움. 지구에서 하루에도 수백만 번씩 일어나는 사랑. 늙은 신사는 그런 하찮은 사랑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소녀에게 신사는 찌든 할아버지일 뿐. 늙은 신사는 결심한다.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젊은 그녀가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성공의 비결’이라고. 신사는 소녀에게 돈을 주고, 옷을 사주고, 좋은 책을 읽어준다. 나이 많은 남자들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늙은 신사는 자신의 ‘주옥같은’ 교훈을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다. 밤새워 글을 쓴 신사는 웅장한 ‘노인의 철학’을 완성한다. 인류의 모든 업적은 노인들이 만들어냈다고!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노인들 없인 불가능했다고.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얼마나 고마워해야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문장에 도달한다.

…그래서 결국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빚진 것이 무엇인가?”

하지만 창살에 부딪히는 눈부신 햇살.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소녀. 꿈과 욕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 추하고 늙은 지금의 자신과 젊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자신을 비교하던 늙은 신사는 책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한다. “아무것도 없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했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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