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원에겐 무료 관광, 기업엔 수수료 받아 … 본분 망각한 코트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회의원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도착하면 공항에 한국인이 영접 나오게 된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닐 땐 통역이 따라붙고 관용차가 제공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밥값까지 알아서 결제해준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해외무역관. 두바이 뿐 아니라 무역관이 진출한 세계 120개 도시에서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공공기관 임원들은 ‘의전 서비스’를 받는다. 이들이 묵는 호텔에 ‘축 환영’이란 리본이 달린 과일 바구니까지 제공하는 곳도 있다.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과 해외의 국내 투자를 유치한다는 고유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서비스다.

 공항 출영→통역·차량 지원→현지 주요 기관·인사 섭외, 관련 조사·브리핑→현지 관광안내→식사 제공→공항 환송. 이 같은 풀 서비스의 비용은 전액 세금이다.

 새누리당 김상훈 의원이 최근 3년간 국회의원·고위 공직자·공공기관 임원의 KOTRA 해외무역관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해외무역관의 의전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1829명에 달했다. 김 의원은 “세계 82개국 120곳에 운영되고 있는 KOTRA 해외무역관이 국회의원·고위 공직자 등을 위한 ‘의전 센터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3년간 국회의원 668명,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 고위 공직자, 공공기관 임원 1161명이 이 서비스를 받았다. 올해는 국회의원의 경우 8월까지 한 달에 43명꼴로 344명이 해외무역관 의전 서비스를 이용했다.

 국회의원·고위 공직자들이 해외무역관의 의전 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한 지역은 대부분 관광 도시였다. 대만 타이베이(92명), 스웨덴 스톡홀름(84명), 스페인 마드리드(79명)를 많이 간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들은 마드리드(47명), 터키 이스탄불(38명), 두바이(38명) 등을 많이 찾았다. KOTRA의 주 고객인 중소기업 직원이 해외무역관에서 서비스를 받을 때는 돈을 내야 한다.

▶현지 바이어와의 상담을 주선해 주고 호텔 차량을 예약하고 통역원을 주선해 주는 ‘해외세일즈출장’ 서비스 ▶투자 환경을 설명하고 투자 대행 기관이나 로펌 등과 상담을 주선해 주는 ‘해외투자환경조사출장’ 서비스를 이용할 때 코트라 해외 무역관은 수수료 조로 30만~58만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의전 서비스는 무료다. 김 의원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회의원·고위공직자들에겐 무료로 지원해 주고 중소기업인에겐 수수료를 부과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고, 코트라 존립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해외 무역관이 국회의원 등에게 의전 서비스를 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그런 해외 무역관이 ‘높은 분’들을 위해 의전 서비스를 하려다 보면 활동의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관련 예산을 확보할 수 없다. 결국 제한된 무역관 운영비를 의전용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난 3년간 가장 방문이 잦았던 실리콘밸리 무역관의 월 운영비는 4670달러(약 500만원 선)다. 지난해 의원·공직자들이 일곱 번 방문했던 상트페테부르크의 경우는 한국인 직원이 1명뿐이다.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의 잦은 방문으로 해외 무역관의 인력과 운영비가 낭비되면 상대적으로 무역 지원사업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코트라 해외 무역관의 업무와는 상관이 없는 의전 서비스가 관행화된 건 입법부·행정부, 산하기관이 전형적인 ‘갑(甲)·을(乙)’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오정근(경제학) 고려대 교수는 “코트라뿐 아니라 공공 기관들이 예산권을 가진 입법부와 경영 평가권을 갖고 있는 정부 부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 국회의장이나 부처 장관 등이 해외 무역관 방문 자제 요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