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74cm 춘향 "세상도 달라졌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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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나씨는 올 5월에 결혼한 새색시다. 남편은 동갑내기 무용수 김재승씨다. 장씨는 “한예종 4학년 때 남편은 갓 입학한 1학년 후배였다. 외로움에 지쳐 있는 나를 남편은 늘 챙겨주었다. 마음이 가장 잘 통하는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이자 냉철한 조언자”라고 말했다. >> 동영상은 joongang.co.kr [김경빈 기자]

“영재? 천재? 솔직히 이런 얘기 듣는 게 가장 싫었어요.”

 국립무용단 주역 장윤나(31)씨. 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는 ‘선두주자’였다. 그럴만했다. 그는 예원 졸업 뒤 영재로 선발돼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거치지 않고 중학교에서 바로 대학에 진학했다는 얘기다.

 또래보다 3년을 벌었으니 그 이후 과정도 당연히 빨랐을 터. 국립무용단 입단(2003년)도 그랬고, 입단하자마자 3개월 만에 주연을 꿰찬 것도 깜짝 발탁이었다.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 무용계에서 장윤나는 파격의 아이콘이자 세대교체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늘 앞서가니 좋았겠다”라고 스치듯 물었다. 예상과 달리 그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돌이켜보면 영재라는 선입견과 비아냥을 극복해 온 과정이 현재의 내 춤을 만든 토대”란다.

 사연인 즉 이렇다.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한예종 영재코스에 입학할 때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친구가 없었다. 모두 언니, 오빠였지 같이 허물을 나누고 마음 둘 곳은 없었다.

 반면 기대치는 높았다. “넌 영재니깐 잘하지?”라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조금만 실수해도 웃음거리가 됐다. 그렇게 10대 중반의 소녀는 혼자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홀로 밥을 먹으며, 스스로 왕따가 되고 말았다. “마음을 닫은 탓인지 인상 차갑다는 얘기 많이 들었다”고 한다.

 스물한 살의 나이로 국립무용단에 입단하고, 바로 주인공을 했을 때도 시끄러웠다. “인생의 깊이를 담아내야 하는 한국 전통춤에 웬 풋내기?”라며 선배들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엄청 쫄았어요. 낙하산 아니냐는 의심도 많았고. 주인공 안 해도 좋고, 잘 한다는 얘기 안 들어도 좋으니 제발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 뿐”이었단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무용수 장윤나는 언제나 튀었다. 우선 남들보다 고개 하나는 더 나온, 174㎝의 큰 키가 눈길을 잡았다. 팔·다리는 길었고 부리부리한 눈매, 짙은 눈썹, 큰 입, 긴 얼굴 등 마스크도 서구적이었다. 아담하고 얌전하며 다소곳하다는, 전형적인 한국 여성 무용수의 이미지와는 180도 달랐다. “외모 탓인지 개성 강한 조역은 늘 내 몫이었다”고 한다.

 화려한 수상 경력과 이력 덕에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장윤나의 무용 인생도 적지 않은 부침이 있었던 것. 그래도 기량만큼은 명실상부 국내 최정상급이다. 풍부한 표현력으로 “몸이 시(詩) 같다”라는 평을 듣는다. 국립무용단 윤성주 예술감독은 “강렬한 인상과 달리 심성은 무척 곱고, 움직임에 카리스마와 애잔함이 동시에 스며 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는 양파 같아 나도 가끔씩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칭찬했다.

 장윤나는 이번에 ‘춤, 춘향’에서 타이틀롤을 맡는다.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춤, 춘향’에서 춘향을 연기한다는 건, 곧 김미애-장현수에 뒤를 이은 국립무용단의 왕관을 장윤나가 쓰게 된다는 의미다.

 “세상 좋아진 거죠, 저 같은 외모로 춘향을 할 수 있으니. 변화된 세상에 걸맞게 당당하고 적극적인 춘향 보여드릴게요.”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국립무용단 ‘춤, 춘향’=국립발레단 ‘지젤’과 교차 편성된다. 17·19·23일은 ‘춤, 춘향’, 18·20·22일은 ‘지젤’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공연된다. 한 무대에서 발레와 한국 무용을 동시에 관람케 하자는 취지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7만원, 02-2280-4114.

국립무용단 장윤나
'춤, 춘향' 서 파격적 주연 맡아
한국무용 세대교체 이끌어
서구적 외모로 전통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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