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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개선행진곡 제맛 내는 '아이다 트럼펫'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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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오페라 ‘아이다’는 187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집트에서 초연됐다. 베르디의 새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객들이 이집트로 몰려들었으나 정작 베르디 자신은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는 베르디가 바다를 무서워해 배타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공연은 물론 성공적이었지만 오페라의 불모지였던 아프리카에서의 공연은 베르디 자신에게 큰 의미가 없었고 그로부터 두 달 후 밀라노에서 올려진 유럽 초연을 진두지휘 한 베르디에게는 그것이 비로소 초연 격이었다.

기록상 초연장소라는 점에다 실제로 피라미드가 바라보이는 점에서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 극장이야말로 아이다 공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을 일 년 내내 공연하며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 더불어 연중 아이다를 공연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카이로 오페라 극장을 보면 한때 적국이었던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가 수백 년에 걸쳐 이집트의 오페라계를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마침내 에티오피아 공격의 사령관이 된 라다메스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제2막 제2장에서 울려 퍼지는 대합창 ‘이집트의 영광’은 ‘개선 행진곡’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선 행진곡을 연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악기는 바로 트럼펫. 트럼펫은 관악기 중에서도 그 역사가 긴 악기로 헨델의 ‘메시아’에서도 전 연주과정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제3장 제48곡에서는 베이스와 한 소절씩을 주고 받는 독주 부분이 있어 훌륭한 트럼펫 연주자 없이 메시아 전곡을 공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트럼펫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메시아 앨범 자킷에는 이례적으로 트럼펫 연주자 이름이 별도로 인쇄되곤 하는데 여기에는 지금의 트럼펫과는 모양이 다른 바로크 시대의 트럼펫, 즉 원전악기가 사용돼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오페라 아이다에서 이집트군의 개선을 알리는 개선 행진곡의 트럼펫 팡파르 또한 지금 사용하는 트럼펫보다 길이가 서너 배가 긴 독특한 트럼펫으로 연주해야 웅장한 극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데 다른 곡에는 별로 쓰이지 않고 오페라 아이다의 개선행진곡 연주시에만 주로 사용된다 하여 ‘아이다 트럼펫’이라 부른다.

대본에 충실하게 코끼리나 낙타 같은 동물들을 무대에 올리지 않더라도 개선 행진곡을 연주하기 위한 아이다 트럼펫만큼은 별도로 준비하는 것이 베르디에 대한 음악적 경의라 하겠으나 불행히도 요즘은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다 트럼펫’을 굳이 구매하지 않고 작은 트럼펫을 이용하는 오페라 연출자들이 많은데 이 같은 사실을 베르디가 안다면 서운해할 일이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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