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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 2주 인도의 오늘 (하)|빈부의 차는 심해도 도둑이 없는 나라|신상초 <중앙일보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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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도에는 TATA라는 이름의 세계 굴지의 대재벌이 활개를 치고 있다. TATA 가족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잘 때까지, 아니 요람에서 묘지까지 자가 생산품만을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사업을 경영하고 있다. 전기·제철·자동차공업에서부터 방직·호텔·백화점·농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종에 손을 뻗치고 있는 TATA 재벌의 존재는 인도 국민 경제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인도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대재벌이 실력을 과시하고 있는 조건하에서 인도의 사회주의 건설이란 매우 특이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 개인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중요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는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국가 투자로 새로 획득하는 생산 수단을 사회화 해나가는 한편, 재화의 유통 과정에 권력 통제를 가해 가지고 소득의 평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개발 순위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중공업이고 다음에는 식량 증산이다. 중공업 우선 주의로 말미암아 성냥·비누·종이 등 일용품이 심히 모자라는데 「호텔」 「보이」에게 한국산 「볼·펜」을 「팀」으로 주었더니 참으로 감사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제트」기는 국산 하는 나라가 휴지 부족으로 불편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 한국인으로서 이해 난이겠지만 그만큼 인도는 국가의 운명을 미래에다 걸고 현재의 고통은 참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수천년을 두고 전통화 한 「카스트 제」는 법적·정치적 평등의 구현 요구로 말미암아 많은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실상 보전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인도 사회주의는 대중을 현혹키 위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인도의 정부나 지식층이 사회주의에의 정열을 지속하는 한 인도 사회주의 건설은 완만하지만 착실히 결실 할 것 같았다.
「봄베이」시 교외에 「아리·밀크·코로니」라고 하는 목장 겸 주립 공원이 있다. 이「코로니」의 가장 높은 언덕은 「봄베이」시를 조망하기에 알맞은 곳으로 관광의 명소로 되어 있다. 이 언덕 위 잔디밭에는 인도를 찾아온 세계 각국의 원수들이 심어놓은 기념수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무마다 「엘리자베드」여왕 부처를 비롯, 「흐루시초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의 원수나 「톱·리더」의 명패가 달려있는데 마치 산 역사를 보는 것같이 흥미진진했다.
이 기념수의 정원은 현대 인도의 정치 관념상에 있어서는 세계 모든 나라가 「이데올로기」적 대립이나 「내셔널·인터레스트」의 상극을 넘어 평화 공존 할 수 있다. 또 평화 공존해야 한다는 뜻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루」수상은 이 관념상에 따라 비동맹, 중립주의, 평화공존 원칙에 따라 동·서간의 긴장 완화, 냉전 해소에 앞장섰고 미소 냉전 대립의 「밸런스·시트」를 차지하여 양 대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끌어들어 번영의 길을 터놓았다.
1963년 초 미소가 평화 공존을 상호 확인할 때까지 인도의 국제 정치상 향배는 세계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었으므로 미국도 소련도 대인 원조나 차관 제공에 인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원조 경쟁에 있어서 미국은 주로 소비재를 제공해 준데 대해 소련은 주로 생산재생산 시설을 갖추어 주었으므로 원조나 차관 액으로 보아서는 미국이 소련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원조는 뚜렷한 흔적을 남겨 아직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Bhilai Steel에는 아직도 소련인 고문단이 상주하고 있고 기술진의 중요 「멤버」의 대다수는 소련서 교육을 받고 돌아온 인도 사람들이지만 그 총 지배인은 이 회사의 최대 고객이 소련인 이상 (해마다 50만t의 철강 자재를 사간다) 『유감스럽지만』소련의 지도나 영향력은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변명했다.
아직도 인도에서는 중공에 대한 적대 감정이 가시지 않고 있다. 「뉴델리」대학에는 큰 벽마다 『되놈 새끼 죽여라』는 구호가 낙서 비슷이 쓰여져 있다. 62년 인-중공 전쟁에서의 인도군의 참패는 대 중공 평화 공존 「무드」를 송두리째 깨치고 말았는데 그 후 인도가 백만 대군을 재건하는데 있어서 주로 소제 장비와 무기를 가지고 무장을 해나갔다는 것은 인도에 있어서 중공·소 대립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는 「모스크바」계의 CPI와 북평계의 CPIM 등 두개의 공산당이 있어 사사건건에 대립하고 있는데 이 두개 공산당의 싸움이야말로 중공-소련 대립 투쟁의 인도 판 축도인 것이다. 나는 여행 중 미소의 불화 대립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않았는데 양대국 평화 공존의 정의는 인도 같은 중립국에서만 엿볼 수 있는 것일는지 모른다.
북괴는 인·중공 전쟁 당시 중공 측을 지지하였던 데다가 현재 북평 쪽에 기울고 있으므로 인도에서의 신문 광고를 이용한 발광적인 선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불신을 사 외교적으로 고립해 가고 있었다.
인도에는 거지는 많지만 도둑놈은 없다. 그리고 그처럼 더운 나라에서 거대한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인도 사람들이 근면·성실한 국민임을 알 수 있다. 인도에서 엄격한 금주법이 제정 실시되고 있는데 이는 빈부간의 대립 감정을 자극치 않고자 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지도층은 그만큼 국민적 단결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도의 민중은 놀라울 이만큼의 소식조식에 견디어 내고 있다. 이것이 기후의 탓인지, 혹은 수백 수십년에 걸친 식량 부족의 탓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6억에 가까운 인도 국민이 소를 잡아먹기 시작하고 왕성한 「에너지」를 갖추게 되는 날에는 「아시아」의, 아니 세계의 정치 판도가 달라지리라는 것이 내가 도달한 결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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