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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내방가사집」낸 조애영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시조시인 조애영 여사는 최근 회갑기념으로 『은촌 내방가사 집』이란 희한한 책을 냈다. 내방가사는 이조시대 규중의 여성들이 생활의 희비애환을 서정적으로 읊고 기록한 문학의 한 장르인데, 신문학보급 이후 그런 가사형식이 아주 없어짐에 따라 이제는 국문학 상 고전취급을 받고있는 것이다.
은촌 여사는 이때 단절된 이 내방가사를 되살려 모든 여성의 「규방 문학으로서」자리잡히기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그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쓴 것을 20편이나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발표한 것이다.
곧 그것은 현대판 내방가사로서는 최초의 것이 되는 셈인데 그는 전통적인 내방가사를, 배워 창작해온 유일한 여류 시인이기도 하다.
여기 실린 가사들은 3·4 혹은 4·4존의 4귀절을 1행으로 하여 매 편에 1백∼2백 행의 장편 서사시.
형식에 있어서는 고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나 내용 면에는 현대의 모습이 현대 감각으로 담겨있다. 시조작가이기 때문에 그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문장 호흡에 숙달돼 있고 가정적으로도 전통적인 가사의 체취와 풍류가 생활화해 있는 셈이다.
경북 영양태생인 조 여사는 고 조지훈 시인의 고모. 1930년대에는 신시도 발표한바 있지만 근래엔 작품발표를 전혀 않은 숨은 규수시인이다.
그는 이번 자작의 내방가사집과 더불어 이제까지 써놓은 시조 36편을 정리하여 『슬픈 동경』이란 시조집도 내어 회갑기념으로 삼고있다.

<…이씨조선 오백년간 봉화를 올려 유명한 곳/한일합방 된 후에는 봄 한철의 나물 터로/궁춘기아 못 이겨서 부녀들이 모두 가네/산에 가서 뜯은 나물이고 안고 돌아오면/남정들은 사랑방에 책상다리하고 앉아/나라 없는 한탄이나 부즈런히 하는 동리/조반석죽 익히는 표 실연기도 서글퍼라/우리조상 무엇 하러 이 산중에 살았을꼬 솔잎 먹고 저 학보고 청렴함만 배웠든가…>
조 여사가 15세때 지어 아버지에게 올려서 경성유학 건을 얻었다는 『산촌향가』의 한 부분이다. 그는 또 『귀향가』에서 어렸을 매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뒷동산에 방소나무 두 가지가 모인 틈에/우리 할매 젖한짝을 뚝떠다가 끼웠드래/산신령이 보낸 사자 호랑이로 화했는지/돌아가신 할매 몸에 젖한짝이 떨어진 채/방소나무 그 밑에서 숨거둔 일 원통하다/나 어릴 때 우리 어매 그이야기 해줄 적에/호구 할매 몫이라며 삼신고리 보여줬네/꿈자리만 편찮아도 정수 떠서 받쳐 놓고/두 손바닥 비비면서 정성스리 비는 말씀/할마님요 할마님요 부디부디 갈지마소/어진 조장 할마님요 이 가정을 편케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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