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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로펌, 법률 개방 맞춰 외국 변호사 쟁탈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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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24면

지난달 27일 고려대 법학관에서 세계한인변호사회(IAKL) 주최로 미국의 ‘전자 증거개시(e-Discovery)’ 대응 전략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사진 IAKL]

#1. 지난달 26일 고려대 법학관 앞. 정장 차림의 남녀 수백 명이 핑거푸드(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요리)로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세계한인변호사회(IAKL)의 정기 총회 참석차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이들이다. IAKL 관계자는“2년 전 서울 대회보다 참가자가 늘어 역대 최대 규모다.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고려대 CJ홀 5층에서는 ‘국제 로펌(법무법인) 경영’에 관한 세미나가 진행됐다. 2012년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FLC) 1호로 등록한 미국계 로펌 ‘롭스 앤 그레이’ 한국사무소 대표인 김용균 미국 변호사는 “한국 법률 시장이 커지고 개방이 진행되면서 외국계 로펌의 성장세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높아지는 외국 변호사 위상

#2.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직장을 얻었지만 최근 들어오는 후배들은 경쟁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외국 변호사의 급여는 비슷한 경력을 가진 국내 변호사의 70% 수준입니다.”

국내 한 대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는 미국 변호사 이모(36)씨의 말이다.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뒤 2011년 귀국한 이씨는 “현재 회사 법무팀 변호사의 절반은 외국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외국 기업과의 비즈니스가 꾸준히 늘고 있어 앞으로도 외국 변호사의 수요는 꾸준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국 변호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외 글로벌 기업의 국제 거래와 분쟁 해결에 이들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차 법률 개방이 시작되면서 해외 로펌들은 국내·외국법이 뒤섞인 사안에 대해 국내 로펌과 공동으로 자문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변수다. 국내 로펌들도 외국 변호사 확보에 열심이다. 이미 130명 이상의 외국 변호사가 있는 김앤장은 물론, 법무법인 광장ㆍ 세종도 40~50명의 외국 변호사를 두고 스카우트를 통해 꾸준히 인력을 보강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최고 대우를 받는 외국 변호사도 있지만, 신규 변호사가 크게 늘어난 한국 시장에 외국 로스쿨을 갓 졸업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취업하기도 만만치 않다. 외국 변호사들도 양극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고려대 법학관 앞에서 점심 식사를 겸한 외국 변호사들의 교류회가 열렸다. [사진 IAKL]

법률시장 개방과 함께 등장한 ‘3세대’
국내 대형 로펌에서 10여 년째 일하고 있는 미국 변호사 A씨(45)는 “최근 늘어나는 외국 변호사는 3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세대는 1980년대부터 국내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미국 변호사 자격을 추가로 취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국내에 서구식 로펌을 도입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영국계 로펌이 독점하던 외국 기업 자문 시장을 개척하고 국내 기업 해외 진출의 기틀도 마련했다.

A씨는 “국내 변호사 자격을 함께 갖춘 사람이 대부분이던 1세대와 달리 순수 외국 변호사가 본격 등장한 건 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부터다. 당시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이들의 자문에 응할 외국 변호사의 수요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들 2세대 외국 변호사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국내 로펌과 기업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수는 700명 정도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3세대 외국변호사는 법률 시장 개방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유럽연합(EU), 미국과 차례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외국 법률자문회사의 국내 진출이 가능해졌다. 2012년부터 외국법자문사(외국 변호사),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해외 로펌 국내 사무소)의 등록이 가능해졌다. 현재 법무부에 등록된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는 18개다. 외국법자문사로는 56명이 등록돼 있다. 연내에 2~3곳의 해외 로펌이 국내 사무소를 열 계획으로 알려졌다.

2016년부터는 3차 개방이 예정돼 있다. 이때부터는 해외 로펌과 국내 로펌의 합작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 합작 법인은 국내 변호사의 고용도 가능해진다. 법률시장 전문가들은 3차 개방을 계기로 해외 로펌들이 국내 중소 규모 로펌을 사실상 흡수하는 등 시장의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변호사는 대부분 미국·영국 변호사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자격증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2006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러시아에서 정식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정노중(42·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국내 기업의 러시아 진출이 차츰 늘고 있지만 현지 법과 관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자문이나 분쟁 해결 업무를 많이 맡고 있다”고 말했다.

법 미비로 명칭·역할 혼선 … 정비 시급
외국 변호사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위상도 높아졌지만 갈등 요소 역시 잠재해 있다.

지난 4월 19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국제변호사’라는 이름을 내걸고 홍보한 외국 변호사 4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당시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세계 어디서나 변호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오도될 수 있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시장을 두고 다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외국 변호사의 자격과 역할에 대해 법이나 제도에 미비한 게 많아 이를 환기시킬 필요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법 체계에 대해 ▶합법적인 외국법자문사의 등록 요건은 너무 엄한 반면 ▶이미 활동 중인 외국 변호사에겐 아무런 규정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외국법자문사로 등록하려면 변호사 자격을 딴 국가에서 3년 이상의 실무 경력이 필요하다. 영국계 로펌 DLA파이퍼 한국총괄대표인 이원조 미국 변호사는 “3년 이상의 현지 실무 경력 등 자격 요건이 엄해 필요한 인재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법자문사 등록 요건이 안 되더라도 국내 로펌이나 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나 회장은 “많은 외국 변호사가 국내 법의 사각 지대에서 적절한 규율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외국 변호사들도 한국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와 필요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로펌들, 무서운 속도로 해외 진출
법률 시장 개방을 국내 시장 잠식 차원에서만 볼 게 아니라 적극적인 해외 진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지적재산권 전문 로펌 피네건 중국 사무소의 에스더 림은 “중국 로펌들의 해외 진출 속도가 무섭다”고 말했다. 재미 한인 2세 변호사로 경력을 쌓은 에스더 림은 2008년 상하이에 피네건 중국 사무소가 문을 열 때 파트너로 합류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세계한인변호사회 상하이 지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최근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는 중국 로펌 ‘킹 앤드 우드(金杜·진두)’의 예를 들었다. 93년 서구적 개념의 로펌으로는 처음 중국에 등장한 이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 다청(大成)·잉커(盈科)와 함께 중국 3대 로펌이 된 뒤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2년 호주 6대 로펌의 하나인 멀레슨과 합작해 ‘킹 앤드 우드 멀레슨’으로 이름을 바꿨다. 합병 후 변호사만 1800명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1월부터 변호사 600명 규모인 영국의 중견 로펌 SJ버윈과 또 합병 법인을 출범시킨다. 합병 후엔 변호사만 2400여 명으로 다청(변호사 2000여 명)을 제치고 중국은 물론 아시아 최대 로펌이 될 예정이다.

정노중 러시아 변호사는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집권 3기를 맞으면서 의욕적인 경제 개혁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은 물론, 이들을 자문할 전문 인력이 함께 진출할 기회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현지 로펌에서 일했던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법률 시장의 범위가 좁은 편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늘면서 차츰 변화가 있겠지만 국내 시장만 봐서는 한계가 있다. 국내 기업들을 도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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