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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2003년 가석방 때부터 지하조직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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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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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석기(51) 통합진보당 의원이 10년 전인 2003년에 이미 RO(Revolution Organization) 같은 지하조직을 구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검 공안부(부장 최태원)는 26일 이 의원을 내란선동·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검찰은 압수한 이 의원 수첩에서 2003년 8월 작성된 지하조직 관련 메모를 찾아냈다. 메모에는 ‘조직을 철저히 지하원칙에 따라 운영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KR(남한혁명) 전략·전술’이란 제목 아래 ‘노동당이 혁명무력을 형성하고 전위조직과 통일전선이 당의 반제역량과 결속돼야 수권 가능’이라는 대목이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전위조직과 통일전선은 남한 내 지하세력을 의미한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북한의 대남 적화 전략과 꼭 같다”고 했다.

 메모를 작성한 시기는 이 의원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됐던 전후다. 민혁당 사건은 주사파의 대부로 알려진 김영환(50)씨 등이 1989년 북한의 지시에 따라 결성한 지하조직이다.

검찰이 26일 공개한 ‘이석기 의원 주거지 압수물’ 사진. 여러 문건과 함께 달러 등의 외화와 5만원권 지폐를 담은 봉투가 보인다. [뉴시스]

 검찰은 또 올 5월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수사회에서 열린 비밀회합에 참석한 김모씨로부터 ‘유알오(URO)’라는 제목의 문건을 압수했다. 2003년 6월 만들어진 것으로, 검찰은 URO를 ‘통합혁명조직(United 또는 Unified RO)’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서에서는 URO가입 조건으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혁명에 대한 충실성’ 등을 들었다. 또 ‘아이덴티(Identification·주체사상)를 지도이념으로 삼는다’며 ‘비합법적 언더알오(Under RO·지하혁명조직)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 문건이 이 의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수사에서 RO가 이 의원을 숭배 대상으로 삼은 사실이 드러났다”고도 했다. 지난해 경기도 곤지암청소년수련원에서 가진 모임에서 조직원들이 ‘이석기 동지를 지키는 것이 당을 지키는 것’이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는 것이다. 경호팀 30명을 뽑아 훈련도 했다. 경호팀은 이 의원을 ‘브이(V·VIP로 추정)님’이라 부르며 “브이님을 육탄으로 보위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검찰은 내란선동 및 내란음모, 반국가단체 찬양·동조 5회, 이적표현물 190건 소지 혐의로 이 의원을 기소했다. RO 모임에서 국가 기간시설을 공격하는 것 같은 폭동을 모의했고(내란선동 및 내란음모),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찬양했다는 것이다. 이적표현물 190건은 이 의원 자택 등지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찾아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를 그린 북한영화 ‘성새’와 북한 소설 등이었다.

 수원지검 차경환(44) 2차장 검사는 “RO가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따라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거쳐 비밀회합을 했다”며 “오랜 시간 준비를 거쳐 조직을 구성하고 내란음모를 한 증거가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 공동변호인단은 검찰 발표에 대해 “핵심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 측 김칠준(53) 변호사는 “검찰은 RO 조직에 대한 실체도 규명하지 못했다”며 “RO에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 구성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말했다. 또 “짜깁기해 증거 능력이 없는 (5월 RO모임) 녹취록에만 의존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앞으로 RO와 북한의 연계성 등을 조사해 관련자들을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이 의원 사건은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 김정운)가 맡았다. 수원지법은 특정 재판부를 택해 사건을 맡기는 ‘임의배당’을 고려했지만 정치적인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건이 들어온 순서에 따라 배당하는 방식으로 재판부를 정했다.

수원=윤호진·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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