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언론 플레이의 일곱 가지 경지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32

업데이트 2013.09.2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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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언론 플레이란 게 뭔가. 제 욕심껏 언론을 사용(使用)하는 것이다. 사사로이 쓰니 사용(私用)이요, 대개 나쁘게 쓰니 사용(邪用)이기도 하다. 이 땅에 등장한 지 오래나 정체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이 부지기수라. 작금의 채동욱 검찰총장 건에 이르면 천하 만민이 헷갈릴 지경이다. 혹자는 기획이라 하고 혹자는 특종이라 하니 말하는 이, 듣는 이마다 다르더라. 이런 차에 25년 신문사 글밥 먹은 죄 크고 또 크도다. 속내 모르긴 저나 나나 매한가지되 보는 이마다 한마디씩 물어오니 ‘나 몰라라’ 손사래 치기도 차마 더는 못할 일이라. 이에 언론 플레이의 일곱 가지 경지를 제멋대로 정리해 남기니 모쪼록 이 잡설이 언론 안팎에서 심심파적, 자계(自戒)의 불쏘시개로나마 쓰인다면 더없는 광영이겠다.

 일단계는 무용(無用)이다. 언론 플레이는 본래 부귀와 권세에 비례하는 법. 저잣거리 장삼이사에겐 남의 일이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 그뿐, 언론에 이름 올릴 일 없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욕심이 생기면, 그때부터 탈이 난다. 이를 소용(所用)이라 한다.

 이단계는 이용(利用)이다. 그저 이름만 알리면 된다. 품위며 인격이 밥 먹여주랴. 마구 망가져도 좋다. 인기만 있어다오. 일부러 흘리는 연예가 스캔들이며 각종 노이즈 마케팅이 그것이다. 관가에서 국민에게 혼날 일, 안 좋은 일은 대개 휴일에 내놓는 것도 그중 하나다. 여기까진 그나마 괜찮다. 저도 남도 큰 피해 주지 않는 단계니.

 삼단계는 오용(誤用)이니 본격적으로 내공이 쌓이는 경지. 이때부터 위험하다. 마구 내두르다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약 모르고 오용 말고 약 좋다고 남용 말자는 옛말도 있을까. 허위 학력·허위 매출·가짜 기술 자랑하다 직장·회사 잃고 패가망신한 이들이 한둘이랴. 틈만 나면 TV며 신문에 얼굴 비추는 폴리페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때 주로 쓰는 수법이 차용(借用)이다. 남의 것 베끼고 가져다 제 것처럼 내놓는다. 남의 오색 깃털로 치장한 까마귀와 같다. 식자연, 학자연, 애국자연 하기 일쑤다. 오호통재라. 이런 수법이 통할 때도 왕왕 있으니. 개중 몇몇은 여의도에 입성, 저 잘났다며 하찮은 내공을 뽐내기도 한다.

사단계는 남용(濫用)이니 강호 고수의 경지요, 본격 민폐의 시작이다. 민생 예산 싹싹 긁어 제 개인 홍보에만 열 올리는 지자체장이며 공공기관장이 그들이다. 가끔 과용(過用)과 섞어 쓴다. 총수가 검찰에 붙들려 가기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재계의 선행·미담 기사, 카메라만 등장하면 욕설이든 폭력이든 얼굴 디미는 여의도 금배지들이 쏟아내는 지면·전파 낭비 신공이 바로 이것이다. 애절하기 짝이 없다. 보는 이 역겹고 눈꼴 시린지 왜 모른단 말인가.

 오단계는 악용(惡用)이다. 자기 영달을 넘어 남을 해코지하는 경지니 악질 중 악질이다. 개인 투자자 등골 빼먹는 작전세력, 정적·반대파는 온갖 비위 사실을 만들고 흘려 낙마시키고 제거하는 권세가들이 그들이다. 이들 손에 걸리면 ‘개잡주’가 명품주식이 되고 쓰레기 하치장이 노른자위 땅으로 변하며 충신이 역적으로 뒤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필귀정도 부질없다. 훗날 진실이 밝혀진들 무슨 소용이랴. 이미 쌀이 밥이 돼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수십 년 세월 DJ를 빨갱이로 몬 세력은 승승장구, 2002년 병풍(兵風)으로 이회창을 낙마시킨 김대업은 TV에 나와 큰소리 펑펑, 세상을 활보 중이다.

 육단계는 일용(日用)이니 매일 뉴스를 만들어내는 몇몇 진영 언론이 그것이다. 달리 혼용(混用)이라고 부른다. 언론 플레이의 절대 경지로 모든 수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스스로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으되,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를 때가 많다. 통제 능력도 없어 가끔 자기가 만든 괴물에 잡아먹히기도 한다.

칠단계는 다시 무용이다. 유시유종(有始有終)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물극필반(物極必反) 세상사 극에 달하면 다시 돌아오는 법. 이제 다시 돌아보자. 언론 플레이를 왜 양날의 칼이라 부르던가. 벤 자와 베인 자 함께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칼을 쓰고자 하는 자, 이 오랜 경구를 부디 잊지 말지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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