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혁신 인재 꼽힌 한국 과학자들, 귀국 후엔 잠잠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31

업데이트 2013.09.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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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과학자는 급여보다 독립성과 자율을 중시합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가 있느냐 없느냐가 나중에 큰 차이를 보입니다.”

 최근 방한한 미국의 대표적 바이오기업인 제넨텍의 마크 슬리브코프스키(58·사진) 박사는 한국에 세계적인 바이오기업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같이 일해본 한국인 과학자들은 최고급 인재인데, 귀국 이후엔 별다른 ‘승전보’가 없더라. 과학자를 대하는 조직문화가 원인인 것 같다”는 얘기다.

 슬리브코프스키 박사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생화학 및 물리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트리톤바이오사이언시스라는 바이오기업을 거쳐 1991년 제넨텍에 합류했다. ‘바이오 신약의 아버지’라 불리며, 바이오기업에 근무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한번쯤 만나고 싶어하는 스타 과학자다. 그는 항체를 이용한 유방암 표적치료제 ‘허셉틴’ 개발 주역이다.

 98년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약품 허가를 받기까지 허셉틴 개발과정 구석구석에 관여했다. 허셉틴은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연간 60억 달러(약 7조원)어치가 팔리는 ‘블록버스터 약물’이다. 대개 제약시장에서 단일 품목으로 연간 매출 10억 달러가 넘으면 ‘블록버스터’란 말을 붙인다.

 이같은 성과는 제넨텍의 남다른 조직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무엇보다 최고의 인재를 뽑는다는 원칙, 과학자가 본분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색다른 아이디어를 인정하는 문화”를 꼽았다. 제넨텍의 기업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면 자리가 비어도 뽑지 않고, 한번 뽑으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 애쓴다는 것.

 제넨텍은 2009년 3월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 로슈에 인수됐다. 지분 100%가 로슈 소유다. 그는 “로슈의 훌륭한 점은 제넨텍의 연구개발 조직에 독립성을 보장해 제넨텍의 조직문화를 지켜준 것”이라고 말했다.

 슬리브코프스키는 제넨텍의 석좌과학자로 연구개발(R&D) 과정 전반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허셉틴을 본뜬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중이라는 얘기에 “임상 보고서를 못봐 뭐라 말하기 힘들다”면서 “중요한 건 초기단계 약물이 실패할 확률은 95%에 달하는 만큼 실패를 관대하게 수용할 줄 알아야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그는 보다 강력한 유방암 치료 신약을 개발 중이다. 일부 유방암세포의 겉표면에만 나타나는 특정 단백질에 달라붙어 면역반응을 유발함으로써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제가 허셉틴이라면, 허셉틴에 항암물질을 부착해 보다 직접적으로 유방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이다.

그는 “한국인 과학자는 머리가 좋고 근면성실해, 얼마 안 가 세계적인 혁신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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