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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회적 공감대 절실한 집시법 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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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그래픽=이말따.
홍완선 천안서북경찰서 서장.

집회 현장에는 늘 긴장감이 감돈다. 집회와 시위는 우리 사회에 잠재된 갈등 요인들이 공동체를 향해 소개되고 분출되는 대표적인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근로 조건을 개선하라며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 식수원이 오염된다며 골재장 진입을 저지하려는 주민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둘러싼 진보·보수단체의 이념 맞대응 집회까지, 그 스펙트럼도 다채롭다.

 다양한 이슈만큼이나 갈등의 구조와 역학 관계도 복잡해 쉬운 문제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중 유머에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든 일이 장가간 아들 내 편 만들기’라고, 낳은 자식도 설득하기 어려운데 이해와 이념이 첨예하게 상충하는 사회 갈등이야 오죽하겠는가.

집회 현장을 지켜보는 경찰의 입장도 그리 여유로운 편이 못 된다. 집회 참가자들의 사연이 딱하고 응당 공감이 가더라도, 도로 점거, 관공서 무단 진입 등 불법 폭력행위를 용인할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밝히듯, 헌법이 보호하는 집회는 단지 ‘평화적’ 또는 ‘비폭력적’ 집회이고 폭력을 사용한 의견의 강요는 보호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킬 수만 있다면 다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행태가 관행처럼 자리잡고 있어 안타깝다.

 사실 최루탄은 이제 고전에나 등장할 법한 유물이 되었고, 시위대의 화염병과 죽봉에 경찰봉이 대응하는 폭력 집회도 감소 추세다. 그러나 전 국민이 지켜봤듯이 지난 7월 울산에서 ‘희망 버스’라는 선량한 구호를 앞세우며 죽봉을 휘둘렀던 폭력 시위대가 건재하는 이상,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긴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집회와 시위는 의사표현의 통로가 봉쇄되거나 제한된 소수집단에게 그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공동체의 필수적 구성요소다. 다만 집회의 자유와 충돌하는 제3자의 법익을 충분히 보호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경찰청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제도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 금지 규정을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한 취지를 겸허하게 수용하되 야간 집회로 인한 제3자의 피해도 최소화하기 위해, 야간집회 제한 시간을 명문으로 삽입하고 소음 기준도 현실화하여 국민의 수면권과 휴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야간 집회를 시간을 정해 제한해야 한다(81.4%)는 여론조사 결과와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집회소음 민원은 왜 법령을 개정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 24일은 헌재가 야간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지 꼭 4년째 된 날이었다.

4년간의 법률 공백을 해결하겠다는 노력이 반갑지만 정치권의 이견이 팽팽해 입법 추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이로 인한 제3자의 피해를 적절하게 조화하려는 입법 취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한 이유다.

홍완선 천안서북경찰서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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