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배우로 만나 한 무대서 열정 태우다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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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자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3 23일 아산시민문화복지센터에서 공연을 앞두고 출연진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4 총 연출을 맡은 김종후씨.

23일 오후 7시 아산시민문화복지센터 지하 1층 소극장에서는 의미 있는 연극이 펼쳐졌다. 20여 년간 교직생활을 하며 여러 연극동아리를 지도했던 전장곤 교사가 배우가 된 제자들과 ‘의자는 잘못이 없다’라는 작품으로 호흡을 맞췄다. ‘스승과 제자, 배우로 만나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공연을 펼친 이들은 100여 명의 관객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27일 오후 7시에는 천안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 예정이다. 23일 이들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텅 빈 무대 위 덩그러니 의자 하나가 놓여져 있다. 문덕수의 가구점이다. 어느 날 이곳에 실직자 신세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강명규가 찾아와 문덕수의 딸 선미의 의자에 유난히 집착하면서 본격적인 연극이 시작된다. 의자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한바탕 전쟁이 치뤄진다.

의자를 꼭 갖고 싶은 실직자 강명규, 공짜로는 줘도 의자를 팔 수는 없다는 미대 지망생 문선미, 의자를 비싸게 팔고 싶어하는 문덕수, 명규의 아내이자 억척 아줌마로 등장하는 송지애까지. 의자를 두고 벌이는 네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소유와 집착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연극은 유머와 무협을 가미한 절제된 언어로 웃음코드를 살리며 욕심이 지나치면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뻔한 메시지를 뻔하지 않은 배우들 연기로 전한다.

1 전장곤 교사(왼쪽 두 번째)와 배우 제자들이 연습 전 기념촬영을 했다.

연극은 나의 삶, 제자는 나의 보물

“연극동아리를 운영하며 2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양성했어요. 그들 중 20여 명은 훌륭한 배우로 성장했죠. 언젠간 이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그 실력을 뽐내고 싶었어요.”

 이번 공연은 문덕수 역할을 맡은 전장곤 교사가 기획했다. 아산 용화고등학교 문학교사인 그는 오래 전부터 배우가 된 제자들과 무대에 오르는 꿈을 꿨다. 배우가 된 제자들의 배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지역 예술 저변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홍성고, 천안중앙고 천안월봉고등학교 등에서 교직생활을 해왔다. 원래 꿈이 연극배우였다는 전 교사는 1991년부터 교직생활을 하면서 연극동아리를 창단했으며 아이들을 꾸준히 지도해왔다. 처음에는 취미 삼아 연기를 배웠다가 전 교사의 열정에 반해 전문 배우의 길을 가겠다는 학생들도 계속 늘었다. 하지만 연극배우로서의 길이 힘들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전 교사는 그런 학생들을 위해 언젠간 배우들이 오를 무대를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생각해왔다.

 “학교를 떠나면서 배우의 길로 들어서는 제자들을 보며 행복하긴 했지만 뭔가 모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달랠 방법을 고민해왔죠. 이번 공연을 통해 제자들을 무대에 올릴 수 있고 저 또한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어 기뻐요.”

 전 교사는 27일 천안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의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내년에 열릴 공연 기획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스승과 제자 배우로 만나다 두 번째 연극 이야기를 준비하는 셈이다.

 전 교사와 함께 교직생활을 하면서 연극과 지역예술발전 고민에 푹 빠져 있는 한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김종후씨다. 김씨는 30여 년간 충남 지역에서 교직생활을 해 왔다. 지난해 명예퇴직 후 연출가로서 파란만장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1987년 ‘파벽’이란 교사극단을 만들었고 1991년 ‘둥지’를 창단하며 줄곧 연출을 담당했다. 전 교사가 처음 창단한 천안아산 교사극단 ‘초록칠판’의 첫 공연도 김씨가 연출을 맡았다.

“사실 연출가는 작품 선정부터 출연배우 섭외까지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먼저 작품과 배우를 선정된 뒤 제의가 들어왔어요. 전 교사의 깊은 뜻을 알고 작품과 배우도 마음에 들어 단번에 수락했죠. 이번 우리의 공연이 지역 예술발전에 한 몫 했으면 좋겠네요. 이번 공연은 전석 만원입니다. 돈의 가치보다는 공연의 가치를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우상과 함께 공연할 수 있어 좋아요”

극중 실직자 강명규의 역할을 맡은 김남호(32)씨, 강명규의 억척 같은 아내 송지애 분에 황수연(23·여)씨, 미대생 문선미 분에 김수진(21·여)씨. 이들은 모두 서울 대학로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배우인 동시에 전 교사의 제자들이다. 배우의 길로 들어선 이유도 전 교사의 연극에 대한 열정에 반했기 때문이란다. 모두들 전 교사를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바쁜 시간 짬을 내서 서울을 오가며 고달픈 연습에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지원금 한 푼 없이 시작했지만 이들은 아산과 천안 소공연장을 매진시키겠단 신념으로 자신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실력 있는 전문배우가 돼 전국으로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고향에서 스승과 같이 연극하는 것도 뜻 깊고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연을 같이 하자는 선생님 연락을 받았을 때 두말 할 것 없이 수락했죠. 오히려 이번 공연을 발판 삼아 더 큰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이라는 인연의 끈은 사제지간 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천안월봉고 2학년 당시 연극 동아리에서 전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는 황씨. 그는 전 교사에게 ‘아빠’라는 호칭을 쓰며 현재까지도 많은 조언을 얻고 있다고 했다. 황씨는 “야자를 빠지고 싶어 시작한 연극이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됐고 지금도 그 때의 그 선택은 최고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 전 교사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김 씨는 홍성고 시절 전 교사가 이끄는 연극 동아리에 몸담기 시작해 여태까지 연극과 살았다. 전 교사의 집도 거리낌 없이 들락거리며 가족과 다름없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문선미 역을 맡은 막내 김씨도 “정말 유명한 여배우가 돼 바빠진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오겠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연극 ‘의자는 잘못 없다’는 선욱현 작가의 ‘잘못 없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미국 뉴욕문화원이 매년 진행하는 기획공연 공모전 ‘Open Stage’에 선정돼 공연한 바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는 ‘관객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연극’에도 선정됐었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 사진=황수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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