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다산왕 기린 장순이는 콘텐트 생산도 왕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15

업데이트 2015.01.0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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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손민호 기자.

에버랜드에 사는 ‘장순이’가 세계에서 새끼를 가장 많이 낳은 기린으로 등극했다. 장순이는 지난 8일 18마리째 출산에 성공해 동물 기네스북에 공식 등록됐다. 장순이가 18마리나 새끼를 낳은 것도 기특한 일이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기린의 평균 수명은 약 25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장순이는 27세다. 1986년 생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이 84세이니까, 얘기하기 조금 그렇지만 구순 넘긴 할머니가 출산을 한 셈이다.

아직 놀랄 게 남아 있다. 기린의 임신 기간은 약 410일이다. 장순이가 쌍둥이를 한 번 낳았으니까, 장순이는 모두 17번 새끼를 뱄다. 이리하여 장순이 생애의 임신 기간은 다 합해서 약 7000일이란 계산이 나온다. 7000일이면 얼추 20년이다. 생애의 7할 이상을 배 속에 새끼를 담고 살았다는 얘기다. 장순이가 다섯 살에 처음 새끼를 낳았으니까, 가임기만 따지면 장순이의 한평생은 임신과 출산, 수유 빼고는 남는 게 없어진다. 참고로 야생 기린은 보통 새끼를 열 번 낳는다.

장순이의 다산 비결에 대한 해설이 넘쳐난다. 장순이의 건강 체질이 제일 먼저 언급되고, 동갑내기 신랑 장다리하고의 금실도 빼놓지 않는다. 에버랜드의 사육 환경과 사육사의 정성도 물론 한몫 거들었을 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장순이는 새끼만 낳은 게 아니다. 화제도 낳았다. 모든 언론이 동물원에 사는 기린 한 마리의 출산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장순이 덕분에 에버랜드 동물원이 뉴스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미 장순이의 인기는,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를 넘어섰다고 사육사들은 입을 모은다.

사람은 동물원에 동물을 보러 간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그냥 동물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기린을 보러 가는 건 다른 얘기다. 기린 중에서도 장순이를 보러 가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여기서부터는 스토리텔링의 영역이다. 우리는 장순이, 다시 말해 장순이를 둘러싼 이야기, 나아가 장순이가 생산한 콘텐트를 보러 동물원에 가는 것이다.

다행히도 장순이는 멀리서도 분간이 가능하다. 키가 4m나 돼 기린 16마리 중에서 제일 큰 축이고, 몸무게도 1800㎏으로 덩치도 큰 편이다. 기린은 나이를 먹을수록 털 색깔이 짙어지는데, 장순이가 워낙 고령이어서 털 색깔도 가장 진하다. 이와 같은 몽타주를 숙지한 다음 동물원에서 장순이를 찾아보시라. 동물원 나들이가 갑절은 즐거워진다.

장순이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여비’가 생각났다. 기억나시는지, 아기 사자 여비. 1999년 이승엽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홈런 신기록을 세웠을 때 이승엽 선수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을 지어줬던 사자다. 여비는 국내 동물원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주인공이다. 여비부터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 개별성을 획득했다. 희귀 동물이어서 인기가 높은 게 아니라 이야기가 있어서 인기가 높은 최초의 동물이 여비였다.

오랜만에 여비 소식을 알아봤다. 한때 사파리를 호령했던 19대 사자왕 여비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이승엽 선수의 홈런이 보고 싶어졌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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