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포커스] 모스크바 시장 선거 '나발니 돌풍'이 남긴 것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10

업데이트 2013.11.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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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알렉세이 나발니를 위해 자원봉사를 한 젊은이들. 나발니 큐브라는 이동식 선전구호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나발니 블로그]

지난 8~9월, 러시아의 83개 행정구역은 ‘통합지방선거’ 열기로 끓어올랐다. 최대 관심사는 모스크바 시장선거였다. 세르게이 소뱌닌(55)과 알렉세이 나발니(37)의 경쟁은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선거결과는 51대 27. 서방 기준으론 싱거운 싸움일지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 정치에 미친 영향은 크다. 선거운동 방식과 27%의 의미 때문이다. ‘나발니 돌풍’이 러시아 정치에 남긴 흔적을 분석했다.

햇볕이 이글거리던 지난 8월, 모스크바 시내에서 젊은이들이 사각으로 된 천막을 들고 옮긴다. 가로·세로·높이 각각 2m쯤 되는 천막. 거기엔 나발니의 얼굴과 각종 선거 이슈, 정책 설명이 간략하게 설명돼 있다. 건물 벽에 붙이지도 않고 이동도 쉬워서 순식간에 이리저리 이동하고 모였다 흩어진다. 이번 선거에서 나발니 진영이 선보인 최대의 아이디어 상품 ‘나발니 큐브’다(큰 사진).

인터넷 경제뉴스 사이트 ‘슬론’의 조사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민에게 2013년 모스크바 선거운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나발니 큐브’다. 선거운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후보의 주요 정책이 적힌 이동식 천막, 즉 큐브를 받았다. 나발니 진영은 여러 선거 아이디어를 잘 만들어냈다.

2010년 10월 임명된 세르게이 소뱌닌은 2013년 6월 시장직에서 사임했다. 그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의해 ‘시장 대행’으로 임명된 뒤 9월의 조기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정치학자 알렉세이 마카르킨은 “소뱌닌이 시장직에 선출되지 못하고 임명된 것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할 것”이라며 “소뱌닌은 아마도 (조기 선거를 통해) 자신의 권한을 공고히 하고,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높이고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 시장 선거 시행이 공표되자 주요 야권 인사이자 인기 블로거, 반부패 활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즉시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와 함께 그의 형사 사건에 대한 재판도 진행됐다. 7월 18일 키로프 시 지방법원은 이미 입후보해 후보 등록증을 받은 나발니에게 국영기업 ‘키로블레스’의 자산 49만5000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징역 5년과 50만 루블의 벌금(약 1400만원)을 선고했다. 나발니 지지자들은 “사건이 날조된 것이며 정치적 내막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나발니는 즉시 항소했다. 며칠 후 징역형은 해외 출국 금지를 조건으로 한 임시 석방으로 바뀌었고, 나발니는 선거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나발니 측은 두 달간 러시아에서 흔치 않은 방식으로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펼쳤다.

나발니는 국영방송을 활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초기엔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했다가 점차 오프라인으로 확대하는 운동방식을 택했다. 국영방송 출연이 안 됐음에도 여론조사펀드에 따르면 나발니는 7~8월 사이 인지도를 69%에서 81%까지 끌어올렸다.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유권자의 69%가 나발니의 선거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소뱌닌 선거운동에 관심을 보인 유권자는 61%였다.

지난해 11월 4일 인민통합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나발니. [AP]

나발니의 선거운동에서 ‘전례 없다’고 꼽히는 부분이 많다. ▶309만 달러(약 33억 원)나 되는 자발적 선거 후원금 ▶수많은 자원봉사자다. 모스크바 전역에서 대학생과 예술인, 컨설턴트, 은행가, 심지어 유명 정치가들까지 1만5000명이 자원봉사자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러시아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전단 돌리기를 맡았던 컨설팅 회사의 비즈니스 분석가 크세니야(여)는 “선거운동은 즐거웠다”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고맙다’거나 ‘안 그래도 표를 주려 했으니 전단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돌이켰다. 크세니야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미소 짓고, 빨리 표심을 잡아야 했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녀는 책임을 맡은 사거리를 지나거나 자신이 탄 지하철 칸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다 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많은 사람은 간접 방식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모스크바 곳곳에서 ‘나발니!’라 쓰인 원형 스티커를 붙인 자동차·자전거·가방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겁 없이’ 베란다에 ‘나발니’라 쓰인 현수막을 걸어놓기도 했다.

나발니도 처음부터 자신을 ‘국민의 후보’라고 치고 나갔다. 선거운동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유권자·자원봉사자·기자와의 지속적인 만남, 소셜 네트워크상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에서 그렇게 했다. 나발니의 트위터는 러시아인 중 가장 인기가 높은 편에 속했고, ‘키로블레스’사건 선고가 내려진 7월 18일에는 전 세계적으로 그랬다. 나발니는 젊은 세대가 쓰는 말을 그대로 썼다. 그런 모습은 자기 일에 열중하는 젊은 피를 가진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나발니 선거본부는 유세 활동에서도 독특한 전략을 사용했다. 후보와 유권자 간의 경계를 없애기 위해 호칭을 조정했다. 현수막과 배너에서 유권자를 ‘너(띄)’라 부르며 ‘러시아를 변화시켜라, 모스크바에서 시작하라’로 했다(러시아어에서 존칭은 ‘븨’, 경칭은 ‘띄’를 쓴다). 20대 여성 엘레나는 “나발니를 지지하진 않지만 이 말은 건방진 느낌보다 가까운 사람의 충고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시민에게 유세뿐 아니라 선거 감시단으로 참여해 달라고 적극 요청했다. 나발니가 현 정부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선거 결과 조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모스크바를 넘어까지 성과가 있었다. 원내외 정당, 사회 기관에서 25만 명 이상이 투표소 상황을 감시했다. 그런 협력이 가장 잘 이루어진 곳은 바로 모스크바였다.

선거운동은 젊고 창의적인 지지자뿐 아니라 ‘잠재적 반대자’를 대상으로도 이뤄졌다. 모스크바 중심지, 최고급 호텔 중 한 곳인 리츠칼튼에서 열린 ‘기업가의 만찬’이 그 행사다. 만찬 요금은 7800루블(약 23만원). 초대장에는 ‘만찬 비용은 7800루블입니다. 이 금액은 만찬 참가자들이 지급하며, 선거운동 자금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만찬 비용은 만찬 당일 리츠칼튼 호텔 측에 현금이나 카드로 계산합니다’고 쓰여 있었다. 투자자와 기업가, 은행가들은 나발니의 경제 정책에 관한 세르게이 구리예프의 발표를 들었다.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러시아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프랑스로 이민을 갔다가 선거에 참여했다. 수많은 기업인이 특정 기업이 나발니를 지지한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익명으로 만찬에 참석하거나 대리인을 보냈다. 만찬에 참석한 인사 중에는 정부기관 관계자도 상당수 있었다.

이날 사회는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모스크바 지부장 아르카디 오스트롭스키가 맡았다. 그는 세 시간 동안 만찬 참석자들과 함께 나발니에게 그가 꾸릴 정부, 부패 척결 전략, 당선 시 취할 구체적 행동, 개인 소득, 이해 갈등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유세 기간에 하루 수차례씩 인터뷰를 하고, 정기적으로 기자들과 회견을 가졌던 나발니는 모든 질문에 척척 대답했다.

나발니에 투표한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원래 지지자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야권 후보들은 원내 정당 출신인데, 이런 야당은 진정한 야당이 아니라고 간주된다. 크세니야는 “선거운동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는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며 “러시아 정치세력 간에 경쟁을 조성하고 정권에 좋은 피드백을 줄 기회가 생겼는데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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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유형의 지지자들은 나발니에게 27.24%의 표를 안겼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 야권 후보자가 얻은 득표율 중 가장 높다. 소뱌닌은 51.37%의 득표로 승리하긴 했지만 예상보다는 낮았다. 이 역시 전례 없던 결과였다. 시장 선거에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 후보가 모스크바 시민에게서 이렇게 낮은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는 러시아에서 전혀 새로운 양상이라고 꼽는다. 나발니 진영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놓여 있다. 2014년 가을의 국가두마(하원) 선거에서 과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리자 레비츠카야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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