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 포커스] 북한, 인도·파키스탄 모델 넘봐선 안 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10

업데이트 2013.11.0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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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 하산과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 사이에 철도가 연결됐다. 이를 기념해 특
구에서는 기념식이 열렸는데 북한 여성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리아 노보스티]
블라디미르 페트롭스키 극동연구소 수석연구원.

예상대로 북한은 또 ‘아무 선결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해 ‘자국의 핵 발전 프로그램’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반면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 의제를 ‘북핵 문제’라고 부른다.

단어 의미에만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은 앞으로 6자회담에서 핵 폐기가 아니라 이를 유지하고, 심지어 더욱 발전시킬 조건을 논의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주 그랬듯이 북한은 자국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이고 방어적이며 경제상의 필요성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한다.

그런 입장에 나름의 근거는 있다. 이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들, 예를 들어 발레리 수히닌 주 북한 전 러시아대사는 “북한은 미국의 안전조치가 없는 조건에서 핵실험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국가의 독립성과 영토보전을 수호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그 뒤 수십 년이 흘렀고 핵 프로그램(최소한 핵 탄두와 운송수단 제작)은 진전을 봤다. 그렇게 많은 국력과 자금이 투입됐는데 폐기할 이유가 있겠는가?

북한 주장에 따르면 미국은 여전히 평화조약과 수교 문제를 논의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또 식량과 연료 지원을 대가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는 이전의 합의, 또 에너지 생산시설 개발 원조(예를 들어 KEDO 프로그램) 등은 “서방의 잘못으로 여러 차례 파기됐다”고 주장한다.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런 주장을 국제정치 맥락에서 보면 많은 의문이 생겨난다. 가장 큰 물음은 북한이 몇 년 전부터 공개적으로 핵심적인 현대 국제 질서의 하나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무시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NPT를 비롯한 기타 조약과 협정,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규정에 기초한 이 체제는 국가별·대륙별 ‘수평적 확산’은 물론 ‘수직적’(핵무기 제조기술 개발) 확산에 이르기까지 핵무기 및 그 운송수단의 확산에 장벽을 치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반영한다.

NPT는 핵무기 보유국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로 한정했다. 이들 나라는 회원국에 안전을 보장하고, 나머지 나라는 대신 비핵화에 동의한다는 데 기초한다.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 국제 정세에서 가능한 유일한 시스템인 듯 보이는 이 체제는 거의 모든 국가를 점진적으로 합류시켰다.

물론 이 체제는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왜 어떤 나라는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고, 다른 국가들은 안 되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여러 번 그런 말을 했다. 국제사회의 긴 설득 끝에 NPT 가입에 동의한 뒤 1993년 보란 듯이 탈퇴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지쳐 남한 일각에선 핵무기 보유에 대한 의견이 일기 시작했다. 그 예로 일본 닛케이 신문의 다카시 스즈키는 남한의 보수정치그룹의 의견을 인용해 ‘한국 국민의 66%가 핵무기 보유에 찬성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다면 우려할 일이다. 일본과 대만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핵무기 보유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북아시아가 더 안전한 곳이 되진 않는다. 그러므로 NPT체제는 그 모든 비용에도 이런 식의 상황 전개를 막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공식 핵 강대국’인 열강들이 모든 대립과 이견을 무릅쓰고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에 핵 비확산 정착을 위해 긴 세월 큰 힘을 쏟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와 인접 해역에 미국 및 소련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도 그래서다. 바로 이것이 1991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물꼬를 텄다. 선언 내용을 모든 당사자가 올바르게 이행했다면 한반도 안보 문제는 진작에 해결됐을 것이다.

북한은 주권국가에 NPT 가입과 탈퇴를 강요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조약에 가입한 200여 국가 중 한 나라가 이런 길을 택하면 나머지 국가들에는 불법적 행위로 인식되며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회원국의 호소에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그런 길을 걸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NPT체제 위반에 성공했다는 것이 미국·러시아·중국 같은 ‘핵 강대국’들이 추후 그러한 시도를 용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주인공이 북한과 남한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블라디미르 페트롭스키 극동연구소 수석연구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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