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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주말마다 온 가족 출동, 쇼핑·레저 원스톱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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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의 분노 … 아무르강의 범람. 러시아 극동의 콤소몰스키-나-아무르에서 지난 23일 큰 홍수가 나 지역 전체가 물에 잠겼다. 우리가 흑룡강이라 부르는 아무르강이 범람한 것이다. [이타르 타스]

지난 22일, 일요일 모스크바 북동부 교외의 쿠즈민키 지하철역.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형 쇼핑몰인 ‘메가 벨라야 다차(MEGA Belaia Dacha)’행 미니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수천 명의 모스크바 시민이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메가 쇼핑몰을 찾는다. 쇼핑몰까지는 짧으면 20분에서 막히면 몇 시간씩 걸리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기자는 그래서 메가몰이 막 문을 연 오전 10시 일찌감치 현장에 도착했다. 6500대를 수용하는 대형 주차장은 아직 비어 있었다.

‘메가 벨라야 다차’는 지상 유리통로로 연결된 두 개의 몰로 이뤄져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쇼핑 구역으로 내려가자 눈앞에 ‘분자운동’이 벌어진 듯했다. 사람들이 쇼핑 카트를 끌거나 카트 없이 이 상점 저 상점 마구 뒤엉켜 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질서는 탈의실 앞 수m 늘어선 대기선에서나 볼 수 있었다. 길고 구불구불한 통로들을 따라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인파가 몰려다녔다. 엄마·아빠 곁을 벗어나 장난감 말이나 자동차 쪽으로 달려가는 장난꾸러기 아이가 발길에 차이지나 않을까 주의 깊게 살피며 걸어야 했다.

묵직한 쇼핑백을 들고 화장품 전문점 MAC을 나서는 다리야(25·여)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새 러닝화를 사려고 스포츠 매장에 갔는데 안 샀어요. 가격이 어이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고민하다 아이라이너나 살까 하고 MAC에 들어갔다가 그만 엉망이 돼 버렸어요”라며 “터무니없이 비싼 운동화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돈을 쓰고 말았지요”라고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그녀의 쇼핑 동선은 사실 정확히 ‘메가 벨라야 다차’가 계산한 그대로였다.

모스크바의 대형 쇼핑몰 메가 벨라야 다차. 주차장이 만원이다. [리아 노보스티]

메가(MEGA) 브랜드는 스웨덴 다국적기업 IKEA의 기획에서 비롯됐다. IKEA는 러시아 시장에 진출할 때 러시아에 어떤 필수품이든 살 수 있는 상점이나 쇼핑센터는 많았지만 쇼핑과 유흥이 결합돼 온 가족이 종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는 곳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침 2000년 대도시 주민의 소득이 안정돼 가고 쇼핑도 유흥이자 여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IKEA는 장소도 여느 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택했다. 모스크바 대형 쇼핑센터의 45%는 지하철역 반경 1㎞ 내에 있다. 그러나 메가 브랜드의 모든 쇼핑몰은 도심은 물론 지하철역에서도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 외곽순환도로(MKAD)와 교차하는 곳에 있다. 그 결과 2002년 모스크바 남서부 지역에 쇼핑몰과 레저센터를 독특하게 결합한 ‘메가 초플리 스탄(Mega Tyoplyi Stan)’이 개장했다.

결국 메가몰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메가몰 주차장엔 빈자리가 없고 인근 지하철역에서 출발하는 미니버스들은 늘 승객들로 차 있다. 러시아엔 지금 대도시를 중심으로 쇼핑과 유흥, 여가가 결합한 ‘메가 쇼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모스크바에는 메가 몰 세 곳이 성업 중이며, 러시아의 열 개 다른 도시에도 추가로 열한 곳이 개점했다. 각 몰의 쇼핑 공간은 4만3000(1만3000평)~18만2000㎡(약 5만4000평)에 달한다. 그중 가장 큰 ‘메가 벨라야 다차’는 미국 미네소타주의 최대 쇼핑몰 ‘Mall of America’와 비교된다. 18세 이상 러시아인 100명 이상 참여한 로미르 홀딩(Romir Holding)사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8%는 쇼핑센터에서 옷과 신발을 구매한다. 54%는 식료품과 가정용 화학제품을, 37%는 가정용품들을 쇼핑센터에서 구매한다고 답했다.

러시아의 쇼핑몰은 오늘날 쇼핑과 오락, 휴식이 겸비된 곳이 되면서 ‘메가 쇼핑’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메가 힘키 몰. 애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아빠는 쉬고, 엄마는 쇼핑한다. [로리]

러시아에 레저·쇼핑 타운 붐
중저가 브랜드 찾는 중산층 주 고객 … 과소비 부작용도

두 아이의 엄마 예브게니야(36)는 쇼핑몰에서 ‘어어’ 하다 산 것도 없이 큰돈을 써서 속이 상한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센터에 갔다가 돈을 쓰지 않고 떠나기란 정말 어려워요. 한 애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고, 다른 애는 맥도날드에 가야 하지요. 또 이 매장에서는 스카프를 사게 되고 저 상점에서는 수제 비누를 사게 되죠. 그러다 보면 돈이 많이 나가게 돼요. 생각 같아서는 이 돈으로 뭔가 중요한 것, 예를 들어 옷 같은 것을 살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라고 말한다.

이런 소비 행태는 소련 시절과 확실히 다르다. 그 시절 쇼핑은 실용적이었다. 찾던 것을 발견해 사면 그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상품들과 살 곳이 부족하던 시절 성장한 사람들은 소련 붕괴 이후 새로운 소비 문화 대열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메가몰 매장은 이런 ‘성향’을 활용했다. 특징은 더 정신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Corbis/Photo SA]

각 메가몰에는 IKEA 가구와 가정용품 수퍼마켓, DIY(Do It Yourself, 자신이 직접 만들어라) 개념의 수퍼마켓(독일 OBI 또는 프랑스 Leroy Merlin), 대형 전자제품 매장, 수많은 의류 매장(Zara, H&V, TopShop, Benetton, Marks and Spencer, Adidas), 스포츠 하이퍼마켓과 식품점 하이퍼마켓 아샨(Auchan)이 입주해 있다. 대형 푸드코트와 커피 체인점은 의무 사항이다. 이곳에는 상점, 커피점과 함께 아이스링크, 암벽 등반장, 미니 골프장, 회전목마, 어린이 놀이터, 영화관도 있다. 이는 스포츠-유흥 프로그램 속으로 몰 방문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시내 쇼핑센터들과 달리 메가몰들은 고급 브랜드를 소량만 들여오려 한다. 따라서 마케팅의 핵심 비중은 중가 상표의 대량 판매에 있다. 인접한 베드타운과 교외 지역들에 살면서 초고가 상품을 살 여력은 없는 중산층이 메가몰 방문객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가몰 구조는 소비를 조장한다. 계획 구매를 고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련 시절 사람들에게 익숙한 백화점에서는 잡화, 여성의류, 신발 매장 등으로 명확히 구분돼 있었지만 오늘날 몰의 구조는 무질서하다. 신발 매장이 전자제품이나 향수 매장과 이웃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공간 구조에서는 계획하지 않은 구매가 늘어나게 된다. 몰 입구에서 만난 다리야도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쇼핑몰에서 펑펑 돈을 쓸 수 있을까. 소비력을 뒷받침하는 주요 요인으로는 ▶저축 문화가 거의 없고 ▶소비 욕구 충족을 위해 돈을 쉽게 빌려 쓸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VTsIOM)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32%만 저축할 뜻이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연금생활자와 재정 지식 수준이 높은 꽤 부유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못 하는’ 나머지 사람들에겐 상반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쪽은 안정된 경제 상황에 대한 자신감을 든다. 다른 쪽은 당장 필요한 식료품 구입비, 자녀 교육비, 의약품 구입비, 공과금에 지출되기 때문에 저축할 여력이 없다. 특이한 점은 러시아 사람들에겐 큰돈을 한꺼번에 ‘펑펑’ 쓰는 것보다 같은 액수의 돈을 조금씩 쓰는 성향이 있다는 점이다. 두 아이의 엄마 예브게니야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은행 카드 이용자 수가 증가한 것도 소소한 지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를 여러모로 부추기고 있다. 많은 기관과 조직에서는 월급을 현금으로 주지 않고 직원의 급여카드로 이체해주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들에게 돈 쓰기를 더 쉽게 여기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2013년 8월 레바다-센터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 1600명 가운데 절반 이상(52%)이 은행 카드를 갖고 있으며 적극 이용한다고 대답했다.

또 최근 러시아 사람들은 신용 서비스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13년 6월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상품을 신용 구매한 적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있다. 상점에서 곧바로 상품을 신용 구매하는 것도 은행 카드만큼이나 인기가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다른 상황에서는 살 수 없을 수 있는 눈앞의 상품들을 구매하기 위해 이 두 가지 방법을 적극 활용한다. 신용 구매는 가전제품, 컴퓨터와 노트북, 전화기와 모피 코트나 가죽 외투 같은 고급 의류로 몰린다.

29세의 사진작가 필립은 신용 경험을 이렇게 털어놨다. “내 작업에는 강력한 최신형 노트북이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필요한 2000달러는 없었습니다. 친구와 가족에게 빌리기도 싫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로 했지요. 그 은행은 소득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나는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기 때문에 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할 수도 있었거든요. 은행은 할부금을 꼬박꼬박 내기만 하면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그는 컴퓨터를 샀고 잘 쓰고 있다.

로미르홀딩사의 조사 결과를 보면 옷·신발·가정용품 외에도 응답자 31%는 화장품과 향수를, 이와 엇비슷한 29%는 선물과 기념품을 구매한다고 답했다. 쇼핑센터에서 수요가 가장 적은 상품으로는 여행사 서비스 상품과 은행·보험 서비스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상품에 관심을 보인 응답자는 각각 2%와 4%에 그쳤다.

예카테리나 아보리나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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