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투기등급 'B' 동양그룹 채권, 개인이 90% 샀다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01

업데이트 2013.09.2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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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뉴스1]

부산에 사는 김모씨는 지난달 동양증권 거래 지점 직원 권유로 3개월짜리 동양레저 기업어음(CP)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 은행 예금금리보다 3배가량 높은 연 7%대의 이자를 주는 게 마음에 들어서였다. 이미 한 번 동양그룹 채권에 투자한 적이 있어 별다른 의심 없이 증권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하지만 최근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 소식을 듣고 패닉에 빠졌다. 동양그룹이 상환자금 마련을 못하면 CP 만기가 돌아오는 11월 전에 투자 원금까지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동양그룹 같은 대기업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 예상치 못했다”며 “몇십 년간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밤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4만9000명, 절반은 2회이상 구매

 4만9000명. 동양그룹 채권을 산 투자자의 숫자다. 2011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약 2만 명)보다 2.5배가량 많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이 개인투자자다.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된 회사채·CP 1조6000억원의 90%(1조4400억원) 이상을 개인이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인당 투자금액도 3200만원이나 된다.

 이들의 절반 이상(51%)은 과거에 한 번 이상 동양그룹 채권을 샀던 이들이다. 동양이 자금난을 극복하지 못해 법정관리와 같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이들은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통상 채권시장은 기관투자가·펀드매니저의 투자영역으로 여겨졌다. 주식보다 구조가 훨씬 복잡한 데다 투자금 단위가 크기 때문에 전문지식과 자금력이 부족한 개인투자자가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동양그룹 채권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동양그룹이 사실상 개인투자자의 자금으로 경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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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은 B등급 채권엔 투자 못해

 원인은 동양그룹·정부·투자자 모두에게 있다. 우선 동양그룹은 2011년 주채무계열(금융권 여신 0.1% 이상 기업집단)에서 벗어난 뒤 줄곧 회사채·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채권은행 감시를 받는 주채무계열이 되는 것보다 자체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동양그룹 계열사 채권이 투자부적격인 B등급 회사채라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연기금·보험사와 같은 기관투자가는 대부분 내부투자기준을 강화해 B등급 채권 투자를 금지했다. 이 때문에 동양그룹 채권에서는 기관 자금이 거의 빠져나갔다. 빈자리는 저금리 기조 속에서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개인투자자가 메웠다. 여기에는 동양그룹 금융 계열사인 동양증권의 전국적인 판매망이 큰 몫을 했다. 동양그룹이 회사채·CP를 발행하면 동양증권이 프라이빗뱅킹(PB)센터와 지점을 통해 고객에게 구입을 권유하고, 고금리를 맛본 투자자가 재투자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연 7%대 고금리에 개인 몰려

 개인투자자가 늘어나는 걸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지적된다. 저축은행 사태와 웅진·LIG건설 같은 대기업 부도 때마다 이들 기업의 후순위채나 채권을 산 개인투자자가 문제가 돼왔다. 동양그룹의 경우도 회사채·CP 발행이 과도해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2년 전부터 나왔다. 한 채권전문가는 “정부와 감독당국이 동양그룹 채권에 대해 좀 더 빨리 경고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 정도로 개인투자자가 많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시장에선 특히 개인투자자가 CP를 구입하는 주요 수단인 ‘특정금전신탁(특금)’ 제도에 대한 보완책이 없었던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고 보고 있다. 동양그룹 투자자도 대부분 특금을 통해 CP를 구입했다. 특금은 고객이 증권사에 돈을 맡긴 뒤 자신이 원하는 금융상품에 골라 투자하는 제도다.

경고않고 방치한 금융당국 책임도

하지만 본인의 판단보다는 증권사 직원의 권유에 따라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불완전 판매’ 논란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혀왔다. 임형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특금은 금융지식이 많은 투자자를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에게 증권사의 주력 상품을 파는 수단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올해 4월 개인투자자 설명 의무를 강화하고 최소 가입 금액을 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선 방안을 내놨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동양그룹이 채권 원금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투자자가 손실을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에 어두운 장년층이 많았던 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와는 달리 고금리를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고액자산가가 많았다”며 “불완전 판매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단체는 동양그룹 채권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집단소송을 하겠다고 벼른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현재까지 300여 명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이들 중 채권에 대해 잘 모르고 투자했다는 가정주부도 많았던 점을 볼 때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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