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再상고심서 무죄

중앙일보

입력 2003.02.26 18:54

업데이트 2003.02.2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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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95년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 피살 사건'이 엇갈린 판결을 거듭하다 결국 다섯번째 재판에서 피의자로 기소된 남편의 무죄가 확정됐다.

이로써 미국의 'OJ 심슨 사건'에 비유되며 8년 가까이 끌었던 이 사건 재판은 일단 끝났지만 수사는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徐晟 대법관)는 26일 치과의사인 아내와 딸을 목졸라 살해하고 불을 지른 혐의로 95년 9월 구속 기소됐던 외과의사 이도행(李都行.41)씨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李씨는 96년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으나 같은 해 2심에서 무죄, 98년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되는 반전을 거듭하다 2001년 2월 서울고법에서 다시 무죄를 선고받았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李씨의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없고, 간접 증거를 모두 종합해봐도 유죄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공소시효(살인 15년)가 남아 있지만 검.경이 李씨를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해왔기 때문에 이 사건은 영원한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그동안 ▶李씨가 집에 있을 때(사건 당일 오전 7시 이전) 범행이 일어났고▶외부 침입 흔적이 없으며▶李씨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간접 증거들을 바탕으로 李씨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李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2심에선 "직접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그러나 3심에서 대법원은 "간접 증거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이에 李씨 변호인 측은 "시체의 굳은 정도와 시체에 생기는 반점 및 위 내용물의 상태로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것은 오차 범위가 넓고 부정확하다"는 스위스 법의학자의 증언을 확보했다.

李씨가 집에 있는 동안 범행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국내 법의학자들의 소견에 대한 반박이었다. 또 李씨 집 안방과 비슷한 구조물을 만들어 화재실험을 해 "장롱에 불을 질러 고의로 화재를 지연시켰다"는 검찰 주장을 뒤집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대법원은 결국 "스위스 법의학자 증언이나 화재 실험 결과 등 간접 증거를 모두 종합해 볼 때 李씨를 유죄로 판단하기는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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