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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중 3학년 전교 1등 박지상군, "100점 비결, 학원 늦게 보낸 덕분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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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학원만 3개 다닌다며?”

대청중(서울 대치동) 입학 후 1학기가 지나자마자 박지상(15·3학년)군은 주변 엄마들 사이에 ‘수학학원 3개 다니는 애’로 소문이 났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중간·기말고사 모두 수학 100점을 맞았기 때문이다. 대청중은 워낙 내신 경쟁이 치열한 터라 엄마들 관심이 남달랐다. 다들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사교육의 힘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박군이 당시 다니던 수학학원은 하나였다. 사교육 도움을 전혀 안 받은 건 아니지만 사교육 1번지에서도 전교 1등 성적은 학원이 아니라 자기 방 책상에서 나온 거였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① 스톱워치로 시간을 맞춰놓고 수학 심화문제를 풀고 있는 박지상군. ② 책상 위 모습. 오디오와 스톱워치, 메모판과 화이트보드 등이 눈에 띈다. ③ 박군 책상·책장에는 학습을 방해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MP3·만화책 등은 시험 한 달 전부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 둔다.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한 남자가 있어. 사랑해 말도 못하는.”

 박군 방에 들어서자 귀에 익숙한 가요가 흘러나왔다. 잠깐 쉬는 중인가 싶었는데, 책상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산만해진다고 많은 부모가 노래를 들으며 공부하는 걸 말린다. 하지만 박군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수학을 담당하는 좌뇌와 음악을 담당하는 우뇌를 동시에 자극해 그런지 집중력이 올라가 이해가 잘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이미 달달 외울 정도로 익숙한 발라드 몇 곡만 집중적으로 듣는 거다.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 호기심이 생겨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수학 심화 문제를 풀 때는 음악을 끈다. 대신 책상 위에 명함만 한 스톱워치를 켠다. “째깍째깍.” 타이머가 돌아가면 박군의 눈과 손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25분 내에 5문제 또는 40분 내에 10문제를 푸는 식으로 시간 내 문제풀이 연습을 위한 거다. 스톱워치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기적의 계산법’(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연산 연습법)을 풀면서다. 매번 시간을 재며 덧셈·뺄셈 등 연산 문제 100개를 정확히 푸는 연습을 했다. 엄마 이혜은(48·서울 대치동)씨가 채점 후 점수를 그래프로 만들어 실력을 점검했다.

이 습관은 중학교 진학 후에도 계속됐다. 이씨는 선배 엄마들로부터 “선행학습을 많이 한 아이일수록 내신 시험을 만만하게 봐서 실수를 많이 하니 긴장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수학 심화 문제를 풀 때마다 스톱워치를 활용해 실전처럼 연습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박군은 “평소 스톱워치로 훈련한 덕분에 시험 때 시간이 부족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스톱워치를 사용하는 것 외에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은 또 있다. 책상 주변 깨끗이 하기다. 시험 한 달 전부터 방 안에는 공부와 관련된 물건만 남겨 놓는다. 평소 책상 옆 책장에 있는 MP3나 만화책, 소설책 등은 모두 눈에 안 띄는 곳에 치워 둔다. 그는 “내가 집중력이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만화책이 눈에 띄면 괜히 뒤적이게 된다”며 “집중력을 흐리는 요소를 사전에 차단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수학 교재를 풀 때도 박군만의 방법이 있다. 단원별로 상·중·하 난이도를 나누는 거다. ‘하’는 시험 3주 전에, ‘중’은 시험 2주 전, ‘상’ 시험 일주일 전에 푼다. 또 항상 서술형으로 답을 해결한다. 머릿속으로 암산이 가능한 문제도 반드시 식을 세운 뒤 답을 구하는 식이다. 박군은 “이런 훈련 덕분에 어떤 유형의 서술형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을뿐더러 계산 실수도 적다”고 말했다. 수학 만점의 비결이 이렇게 곳곳에 숨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엄마 힘이 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엄마가 직접 영어·수학을 가르쳤다. 영어는 5세 때부터 매일 한 시간씩 꾸준히 함께 책을 읽으며 해석해 주고, 외워야 할 단어를 정리해 줬다. 체계적인 문법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학원에 보낸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수학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가르쳤다. 학년별로 2~3개 다른 교재를 풀게 했다. 하지만 중2 심화 부분 선행을 할 즈음 한계가 왔다. 수학 전공자도 아닌 엄마가 가르치기에 난도가 너무 높아져서다. 이씨는 “그때 처음 수학학원에 보냈다”며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을 받았으면 중학교에 올라와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박군은 사소한 계산 실수로 오답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실수하면 아는 문제라도 다시 풀게 하는 등 반복적으로 학습시켰다. 이씨는 “학원에 다녔으면 진도 나가느라 이런 사소한 습관을 고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랬다면 고학년이 돼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다는데 어떻게 ‘엄마표 학습’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을까. 그건 성취욕 강한 박군의 성향과 관계가 있다. 박군은 5세 때부터 엄마에게 먼저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엄마 욕심이 아니라 아이가 원해서 시작한 거라 그만큼 결과도 좋았던 거다. 박군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한 말이 ‘엄마, 나 이제 뭐해’였다”며 “하루에 학습해야 할 양을 정해 주면 엄마 예상보다 훨씬 일찍 끝낸 뒤 또 공부할 걸 달라고 엄마를 졸랐다”고 말했다. 엄마가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 게 아니라 아들이 엄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압박한 셈이다. 이씨는 “심지어 3세 때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 줄 때 조금이라도 내용을 줄여 대충 얘기하면 ‘제대로 읽어 달라’고 야단 아닌 야단을 맞았다”고 떠올렸다.

 공부를 좋아하는 우등생이라 공부만 할 것 같지만 박군 역시 컴퓨터게임은 한다. 계획표에 매일 한 시간 게임하는 시간을 적어 넣을 정도다. 박군은 “아빠가 골프 치는 것처럼 내가 게임하는 건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너스레도 떤다.

 그렇게 인간관계에 공을 들인 덕분일까. 친구관계도 좋다. 초등학교 때는 학년마다 학급 회장, 부회장을 번갈아 했다. 중학교에서도 2학년 2학기 때 학급회장을 맡았다.

 박군은 변호사가 꿈이다. 벌써 3학년 2학기인데 어느 고등학교에 갈지 아직 고민 중이다.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자율형사립고나 일반고에서부터 특목고까지 두루 생각하고 있다. 이씨는 “어떤 학교에 가든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줄 계획”이라며 “첫째 때는 내 욕심에 사교육에 많이 의존했는데, 학원을 별로 안 다닌 지상이가 성적이 더 좋은 걸 보니 공부는 결국 자기가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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