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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호남 인구 추월 가속 … "영호남 아닌 영·충·호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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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 많은 선거 전문가는 인구통계학에 더욱 주목하기 시작했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 유리, 낮으면 여당 유리’라는 선거의 기본 공식이 깨지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거대한 변화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제 집권을 노리는 정당이라면 유권자의 지역·연령별 분포를 가장 기초적인 선거 변수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5월 한국 정치 지형에서 작지만 의미심장한 변화가 발생했다. 조선시대 이후 처음으로 충청권의 인구가 호남권을 앞지른 것이다. 지난 5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충청권의 인구는 525만136명, 호남권은 524만9728명으로 충청권이 408명 더 많았다. 8월엔 충청권 525만9841명, 호남권 524만9747명으로 석 달 만에 격차가 1만94명으로 벌어졌다.

4년 뒤엔 충청이 호남보다 31만 명 많아

호남권은 인구가 정체상태지만 충청권은 최근 매달 3000여 명씩 인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은 차기 대선이 열리는 2017년엔 충청권 인구가 호남권보다 31만 명가량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구 변화에 있어선 역사적인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조선 정조(1798년) 때 호구조사에서 전라도는 인구가 122만6247명으로 충청도(87만1057명)보다 훨씬 많았다. 일제시대에도 이런 추세는 쭉 이어져 1925년 조사에서도 호남 인구는 346만3969명, 충청은 209만8446명으로 나타났다. 80년까지만 해도 충청 인구는 호남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충남의 천안·아산·당진지역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의 투자가 급증하면서 충청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충청권 인구 유입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평가다. 반면 산업화 기반이 부족한 호남은 70년대 이후 대규모 이농(離農) 현상으로 인구가 대폭 줄었다.

 유권자 수에서도 지난해 대선 때 호남은 412만8591명으로 충청(410만4716명)을 가까스로 앞질렀지만 이번 달을 기점으로 19세 이상 주민등록인구 수가 충청권이 호남권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이시종 충북지사는 “영호남 중심의 지방 구도가 이젠 ‘영충호(영남·충청·호남)’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세종시 효과 … 호남 기반 민주당은 고민

 이런 인구 구성의 변화는 호남을 전통적인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주당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현재 국회 의석수는 호남(30석)이 충청(25석)보다 5석 많다. 향후 선거구 조정 협상에서 충청권은 이 같은 인구 변화를 근거로 더 많은 의석수를 요구할 게 뻔하고 이는 호남 의석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발언권이 그만큼 약해진다는 얘기다. 중앙대 손병권(정치학) 교수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던 것은 충청의 전략적 가치를 내다봤기 때문”이라며 “민주당도 과거처럼 호남에만 안주해선 곤란하며 충청을 비롯해 강원도 등 중부권을 공략할 수 있는 인물과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인구 구성 변화와 함께 정치 구도의 변화를 이끄는 또 하나의 동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 수준으로 진행되는 노령화 현상이다.

 이미 지난해 대선 때 처음으로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20~30대보다 많아졌고 이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관측을 낳았다. 인구통계학적 분석에 따르면 유권자 평균 연령 상승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고령화로 유권자 넷 중 1명 60대 이상

 통계청 인구추계를 들여다보면 2017년 대선 때 유권자 4명 중 1명(24.6%)은 60대 이상이며, 5명 중 1명(19.8%)은 50대다. 다시 말해 유권자의 44.4%가 50대 이상이 되는 셈인데 이는 지난해 대선 때 40.0%보다 4.4%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반면 20~30대(19세 포함) 비율은 지난해 38.2%에서 35.7%로 낮아진다.

통상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20~30대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7년 대선에선 실제 투표자 가운데 50대 이상의 비율이 거의 50%에 육박할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노무현 후보의 돌풍이 불었던 2002년 대선 당시 20~30대의 비율이 48.3%나 됐던 상황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15년 만에 이처럼 유권자 연령 구성이 급속히 바뀌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 일각에선 50대 이상의 유권자 비율이 계속 증가하는 현실에 대해 일본이 이미 경험한 ‘실버 민주주의’의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버 민주주의’란 정치권이 은퇴자 복지와 같은 노·장년층의 이슈만 대변하다 보니 세대 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또 노·장년층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정치의 보수화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경희대 임성호(정치학) 교수는 “유권자 평균 연령이 상승하는 현상은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에 유리한 듯하지만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 상승했기 때문에 반드시 인구 노령화가 유권자의 보수화로 이어진다고 단언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김정하·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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