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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미·러, 협력 시대 열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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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 방안에 합의한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양국이 합의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제네바에서 만나 상호 중대한 이익이 걸린 이슈에 대해 협정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이 긴급한 글로벌 이슈를 함께 처리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앞으로 국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국의 협력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합의는 또 다른 것을 달성할 수도 있다. 즉 폭탄을 투하하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민이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를 향해 내놓은 조언은 도덕주의자처럼 구는 내용인 데다 심지어 무례하기까지 하다. 이런 조언에 대한 국제적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무력을 마지막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사용하려 드는 미국의 행태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과 국가를 멀어지게 했다.

 다른 나라의 내란을 지원하는 것이 전형적 사례다. 국민을 비참하게 하는 야만적인 정부의 치하에서 신음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적지 않다. 하지만 타국의 무장 반란을 지원하는 것은 중대한 조치다. 시리아에서처럼 반군 측이 자신들이 끝낼 수 없는 일을 시작했을 경우 특히 그렇다. 미국이 기존 정부에 대한 반란을 절대 지원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지원하면 그 과정에서 파트너를 많이 확보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이 같은 정책적 결정은 드물게 이뤄져야 한다. 또한 정부에 대한 무력 전복을 지지하는 일은 국제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

 미국이 제네바에서 러시아와 합의를 이루는 데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국제적 위치가 일부 손상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더욱 폭넓은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에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질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맥락에서 말이다. 양국 관계는 완전한 새 출발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출발점은 시리아 평화협정을 모색하는 것이다. 현재 서로 상대를 살육하고 있는 이 나라의 각기 다른 공동체가 한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공존할 수 있게 하는 협정 말이다. 아마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옳은 것일지 모른다. 야만적이며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인물인 그는 궁극적인 해법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미국은 본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법을 생각해낼 시간은 있다. 그리고 2014년 시리아에서 이뤄질 선거는 이 난제에서 체면을 세우면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역할은 알아사드를 압박해 양보안을 내놓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알아사드는 평화 프로세스가 자신을 파괴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현재로선 그런 생각이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현 시점에서 평화 프로세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타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군사적 승리를 거둘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미미하다. 미국이 지원하는 무기가 반군 측에 도착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양측이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운다는 해결책은 우리 문명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 이런 시나리오는 시리아의 마지막 어린이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계인 모두가 손을 모아 도와야 한다. 러시아·미국뿐 아니라 아랍·중국·유럽 등 어느 누구든 말이다. 제네바에서 나온 희망의 빛이 우리 모두를 인도하게 해야 한다. ⓒProject Syndicate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