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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게 하라, 소비하게 하라 … 그게 기업이 살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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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호 22면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에 있는 바릴라 본사에서 만난 루카 바릴라 부회장. 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1 바릴라 브랜드를 광고했던 이탈리아 가수 미나. 2 영화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모델로 나선 바릴라의 제빵브랜드 물리노 비앙코의 TV 광고.

지난 6월 세계적인 광고·커뮤니케이션 그룹 하바스(Havas) 미디어가 실시한 ‘의미 있는 브랜드(Meaningful Brands 2013)’ 조사 결과 이탈리아인들이 생각하는 최고는 파스타 브랜드 바릴라(Barilla)였다. 2위는 초콜릿을 만드는 페레로(Ferrero), 3위는 제과제빵 브랜드 물리노 비앙코(Mulino Bianco)가 차지했다. 1위와 3위는 바릴라라는 그룹의 식품 브랜드다. 항상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광고와 국민건강을 생각하는 기업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 곳이다.

세계 최대 파스타 제조기업 ‘바릴라’ 루카 바릴라 부회장

바릴라는 지난 6월 유럽연합(EU)으로부터 ‘2013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상을 받았다. 2년간의 연구를 통해 파스타의 원료인 듀럼 밀(durum wheat)을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발생을 30%까지 줄이고 비용을 30% 절감하면서 동시에 수확량을 20% 이상 올릴 수 있는 실험결과를 내놨기 때문이다. 또 2013년 포장 오스카 디자인 퀄리티 부문에서 즉석 파스타 디자인으로 1위를 차지했다.

1877년 빵을 구워 팔던 작은 가게는 이제 11개 브랜드에서 매년 170만t의 식품을 생산해 100여 개국에 수출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2년 순매출액은 40억 유로(약 5조7920억원)에 달한다.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에 있는 바릴라 본사를 방문해 루카 바릴라 부회장에게 경영철학을 물었다.

-선대 회장인 고 피에트로 바릴라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들었다. 어떤 분이었나.
“아버지에게 바릴라는 삶의 전부였다. 1960년대 말 노조 파업으로 가업을 미국 기업에 판 뒤에도 어떻게 되살까만 생각하며 사셨다. 8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부활하고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이 나아지면서 바릴라에도 재시동이 걸렸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과 일이었고 직원들도 가족처럼 대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한 시간 동안 공장을 돌아보며 기계를 점검하고 생산라인을 관리하며 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선대 회장 “할 일 있는 너희는 부자”
-아버지의 경영철학은.
“아버지는 대단한 재력가는 아니었지만 진정한 사업가였다. 80년대는 열을 투자하면 열다섯을 벌던 시기였다. 아버지는 버는 족족 투자했고 돈을 따로 모을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 우리에게 남긴 재산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항상 ‘너희는 부자다.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너희 소유의 회사가 있고 명성도 있는데 돈이 왜 필요하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바릴라가 한창 번창하던 8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재력가 데 베네데티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제안하며 회사를 팔라고 했다. 아버지는 ‘당신은 그 많은 돈으로 내 아이들의 교육을 망치려 하는군요’라고 말하며 단박에 거절했다. 현재 바릴라는 전 세계 50여 곳의 공장에서 1만3000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는 큰 식품회사로 성장했다. 아버지가 복지를 위해 투자 한 덕분이다.”

-복지를 위해 투자했다는 말의 의미는.
“공동체에 복지가 있어야 기업은 성장할 수 있다. 요즘 같은 불황에는 제품의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올바른 투자를 할 수도, 필요한 사람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수도꼭지를 잠그듯 투자를 중단하게 된다. 일은 누가 제공하나? 바로 기업이다. 하지만 소비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기업은 무너진다. 만일 소비자들이 바릴라의 파스타를 사지 않고 수퍼에서 직접 만드는 반값 파스타를 구입하면 바릴라는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할 것이고 결국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반값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수퍼는 작은 제조회사들에 최저가의 조건을 내걸기 때문에 이들은 이윤 없이 제품을 생산하게 되고 결국 회사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는 비용 절감의 문화지 이윤 창출의 문화가 아니다.”

-그럼 이윤 창출의 문화란 무엇인가.
“사실 이윤이란 상당히 위험해서 신중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릴라의 사고방식으로 관리된다면, 즉 100을 벌어 90이나 95를 재투자한다면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만들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돈을 벌어 다시 투자하지 않고 국채나 보석을 구입한다면 그건 경제성장을 막을 뿐이다. 지금 전 세계 대형 투자은행에는 중국이나 러시아·미국·중동 투자자들이 보유한 어마어마한 부가 묶여 있다. 이 돈을 풀어서 사람들이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은 소비를 할 것이고 그 소비가 결국 복지를 만든다. 이 이론이 바릴라가 많은 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이다.”

-공장과 사무실이 갤러리 같다. 부친은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던데.
“사실 아버지의 투자정신은 미술품 구입에도 스며 있다. 비싼 그림을 구입할 때마다 ‘은행 빚도 아직 다 못 갚았는데 이걸 사세요?’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아들아, 이건 잘 쓰는 돈이다. 화가들의 그림을 사주면 그들은 그 돈으로 다른 그림을 그릴 캔버스나 물감을 살 테고 그러면 물감 공장이나 캔버스 천 공장도 계속 일을 할 테고 공장 직원들이나 화가들이 힘내서 일을 하려고 바릴라의 파스타를 사서 먹을 것 아니냐? 그럼 결국 우리가 돈을 버는 거란다’하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예술적 취향은 바릴라의 광고나 포장에도 반영됐다. 당대 유명했던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포장디자인을 의뢰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같은 세계적인 영화감독과 함께 TV광고도 만들었다.”

“작황 따라 좋은 밀 배합해 품질 유지”
이탈리아의 건조 파스타는 밀 종류 중 가장 딱딱한 듀럼 밀로 만들도록 규정돼 있다. 듀럼 밀은 가뭄에 잘 견디고 경작 주기가 짧아 주로 지중해 지역이나 미국 애리조나주와 같이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재배된다. 글루텐이 많이 함유돼 녹말 입자가 쉽게 파괴되지 않고 지나치게 부풀어 오르지 않아 파스타의 형태를 단단하게 유지할 수 있다. 듀럼 밀은 다른 종류에 비해 색도 진하고 굵고 크며 노란빛이 도는 배젖이 있다. 씹을 때 쫄깃쫄깃한 느낌이 난다.

-빵을 만드는 밀도 와인을 만드는 포도처럼 매년 다른 품질과 맛으로 수확될 텐데 바릴라의 파스타는 한결같이 최상의 품질을 유지한다. 비결은 무엇인가.
“좋은 질문이다. 어떤 해는 이탈리아 밀 수확이 최고일 수 있고 어떤 해는 미국이나 유럽 다른 나라가 더 좋은 밀을 수확할 수도 있다. 만일 이탈리아산의 품질이 나쁘면 조금만 구입하고 다른 나라의 좋은 밀을 더 많이 섞어 매년 같은 품질을 유지한다. 솔직히 이탈리아의 듀럼 밀이 세계 최고는 아니다. 제일 좋은 것은 미국 애리조나산인데 이 밀만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생산 및 운반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 바릴라를 이끌고 있는 세 형제의 경영철학은.
“나보다 두 살 많은 형 귀도가 그룹 회장을, 나와 내 동생 파올로가 부회장직을 맡았다. 우리 삼형제는 아버지처럼 경영의 천재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교육을 받았고 그분이 간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업에 투자하고 개혁하고 기업의 확장을 위해 저축도 하며 일에 전념한다.”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나.
“젊은 층 실업문제를 혼자 해결할 정도로 바릴라가 크진 않지만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다. 일단 국내에서 지속적인 투자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기업의 미래로 보면 이탈리아보다 외국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더 많지만 당분간은 국내 투자를 계속할 예정이다. 투자로 공장이 생기면 자연히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다. 몇 달 전 4000만 유로(약 579억원)를 투입해 첨단기술로 파스타 소스를 만드는 새 공장을 파르마 근처에 완공했다. 또 올해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공모전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1인당 4만 유로(약 5789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받게 된다.”

-기업의 좌우명이 있다면.
“아버지가 항상 하신 말씀이 있다. ‘네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어라’. 그래서 나도 내 자식들에게 ‘회사 수익을 올리기 위해 바릴라 제품을 먹지 말고 얼마나 좋은 것을 먹는지 알기위해 그것을 먹어라’라고 말한다. 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려가며 연구했고 그 결과는 제품을 쓰는 사람이 말해준다. 우리는 다른 기업처럼 부자 기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기업혼은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바릴라의 숙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우리 같은 대기업은 성장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낙오한다. 경쟁사들이 우리를 뒤로 밀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경쟁에서는 최고만 살아남는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최고의 품질,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그것을 사회에 투자해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왔다. 우리는 사라지길 원치 않는다. 난 바릴라처럼 멋진 기업은 세계에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네슬레·다농·크래프트 등 바릴라보다 규모가 더 큰 식품 제조 그룹은 많다. 하지만 우리 같은 기업윤리, 우리 같은 전통, 그리고 우리처럼 국민건강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활동하는 기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바릴라의 철학이며 숙제다.”


1 밀가루에 달걀을 넣어 반죽한 토르텔리니 파스타 2 탈리아텔레 파스타 3 물리노 비앙코에서 만든 식빵 파뇨타

파스타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사막을 횡단할 때 밀가루 반죽이 상하지 않도록 막대 모양으로 말아 건조시켜 실에 꿰어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 11세기에 아랍인들이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섬을 점령하면서 건조 파스타가 시칠리아 섬에 전해졌고 건조한 기후 덕분에 쉽게 뿌리를 내렸다.

처음에는 손으로 먹는 서민의 음식이었지만 18세기에 젠나로 스파다치니가 이빨이 4개 달린 포크를 발명하면서 귀족의 식탁에도 올라갔다.

19세기 들어 압착기에 구멍 뚫린 동판을 붙여 다양한 모양으로 생산됐다. 크게 ▶스파게티 같은 국수 형태의 긴 파스타 ▶펜촉같이 비스듬히 잘린 펜네나 나비 모양의 파르팔레 등 짧은 파스타 ▶라비올리나 토르텔리니 등 만두처럼 속을 채운 파스타 ▶수프에 넣어 먹을 수 있게 별이나 쌀 모양으로 작게 만든 파스타로 나눌 수 있다. 이탈리아 전역에 약 300가지 형태가 있으며 소스에 따라 다른 형태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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