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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인근 군부대 총기 난사 … 뻥 뚫린 미국의 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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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해군복합단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밤 시내 중심가 프리덤 플라자에 모인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 AP=뉴시스]

미국의 안전망이 또 뚫렸다. 이번엔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에서 총격 사건이 터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에서 4㎞,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연방의원들이 회의를 열던 의회에서 불과 1.6㎞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다.

 이 사건으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용의자인 에런 알렉시스(34·사진)를 뺀 나머지 12명은 영문도 모른 채 숨졌다. 17일 오전(현지시간)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14명의 부상자들 역시 이유를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연방수사국(FBI)과 해군, 워싱턴경찰국 등은 사건 발생 24시간이 다 돼가도록 이번 사건이 테러인지, 단순한 총격 사건인지 성격 규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이 또다시 총격에 의한 대형 살상 사건에 직면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 “오늘은 암흑의 날”이라는 베이너 하원의장의 개탄이 공허하게 들렸다.

 16일 오전 8시15분. 주말의 휴식에서 깨어난 월요일 아침 모두가 일터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워싱턴 남동부에 위치한 해군복합단지(네이비 야드) 내 사령부 197번 건물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1층 카페테리아에 있었다는 퍼트리샤 워드는 “세 발의 총성이 울린 지 3초 뒤 다시 네 발의 총성이 들렸다. 갑자기 카페 안이 아수라장이 됐다. 누군가가 ‘뛰어’라고 외쳤다.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몰라 사람들이 마구 뒤엉켰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백 명의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해군복합단지를 에워쌌다. 속보를 전하는 CNN과 폭스뉴스 등 방송사들은 우왕좌왕했다. 용의자가 군복 등을 입은 3명인데 한 명은 사살되고, 나머지 2명이 건물을 빠져 나왔다는 등 보도가 춤을 췄다. 사망자 수도 방송사마다 제각각이었다.

 밤 10시가 돼서야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다. 사망자 수는 용의자를 포함해 13명, 부상자 수는 14명이었다. 용의자는 1979년생 흑인으로 HP(휼렛패커드) 자회사인 ‘HP 엔터프라이즈 서비스’의 국방 관련 하청업체 ‘더 엑스퍼츠’의 직원으로 일했던 알렉시스로 밝혀졌다. 연방 당국은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범행 동기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아직 이번 사건의 동기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테러 공격으로 의심할 만한 징후는 없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FBI는 알렉시스의 최근 행적과 관련해 시민들의 제보를 기다린다고 밝혔다.

 숨진 용의자인 알렉시스는 뉴욕 퀸스에서 태어나 2007년부터 2011년 1월까지 텍사스 포트워스 기지에서 해군 상근예비역으로 군수 담당 중대에서 근무했다. AP통신은 그가 2004년 5월 시애틀에서 자신을 경멸했다는 이유로 주차된 차량의 뒷바퀴에 총을 쏜 혐의로 체포된 일이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알렉시스가 텍사스 근무 시절인 2010년 9월 아파트 위층 거주자와 시끄럽다는 이유로 시비를 벌이다 총을 쏴 체포된 일이 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총기를 수리하던 중 실수로 발사됐다고 했으나 해군 당국은 ‘분노조절에 장애가 있어’ 2011년 1월 전역했다고 밝혔다.

 특히 알렉시스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현장에 있었으며, 알렉시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 이후 분노조절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불교에 심취해 텍사스에서 매주 불교사원을 찾았으며, 지난 5월까지 텍사스의 태국 음식점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은 전했다.

 알렉시스는 경찰과의 총격전으로 숨질 당시 AR-15소총과 산탄총, 반자동권총 등 3정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이 총기를 들고 검문검색이 삼엄한 해군복합단지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총격 사건의 후유증은 워싱턴을 강타했다. 해군복합단지 주변 도로가 하루 종일 통제됐고, 의회의사당이 일시 폐쇄됐다. 주변 학교엔 임시휴교령이 내려졌으며, 인근 경기장에서 이날 밤 열릴 예정인 워싱턴 내셔널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프로야구 경기도 취소됐다.

 이날 밤 백악관 인근에선 한 백인 남성이 폭죽을 터뜨려 긴급체포되는 일도 발생했다. 9·11 테러 12주년 추모행사를 치른 지 1주일도 안 돼 미국의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미국은 다시 ‘테러 공포’에 떨고 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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