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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뵐까 … 80대 할머니 명인의 춤과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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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몇 년 사이에 많이 쇠약해지셨다. 장금도(85) 여사의 민살풀이춤은 앉았다 일어서기도 힘겨웠다. 구음의 명인 유금선(82) 여사는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무대에 들어섰다. 지난해 올해 아니라 어제오늘이 다른 연세이니 당연하지 싶다. 그중 젊은 권명화(79) 여사의 북 치는 손끝에 그래도 기력이 남아 있었다. 다음에 언제 이 할머니들을 뵐 수 있을지 방정맞은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12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해어화(解語花)’ 공연 이야기다.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는 기생을 뜻한다. 엄연히 사람인데도 옛 선비들이 제 깐엔 쳐준답시고 그렇게 불렀다. 꽃은 여자, 나비는 남자에 흔히 비유되는데, 그렇다고 선비들이 자기를 말 알아듣는 나비, 즉 ‘해어접(解語蝶)’이라 칭한 것도 아니다. 여자를 동류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 장금도 여사는 젊은 시절 군산 바닥을 휩쓸었다. 인력거 두 대를 대령해야 출장 공연을 나갈 정도로 오연했다. 1955년께, 열 살짜리 아들이 친구와 싸우고 들어왔다. “니기 엄마 우리 집서 춤췄다”는 놀림 때문이었다. 춤을 접었다. 수십 년 은둔 끝에 83년 ‘발굴’돼 무대에 섰으나 여전히 식구에게조차 부끄러운 일이었다. 2005년 10월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날 아들이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50년 만의 화해였다. 그러나 아들은 베트남전에서 얻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3년 뒤 숨을 거둔다. 동래 온천장을 휘어잡던 유금선 여사의 곡절도 장금도 못지않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장구에 기타까지. 못하는 게 없었으나 사랑이 탈이었다. 남편이 요절하자 짧은 사랑도 저물었다. 마흔한 살에 다시 ‘립스틱 짙게 바르고’ 기방에 돌아왔다. 유 여사가 부산시 무형문화재 ‘동래학춤’의 구음 보유자로 지정된 것은 그나마 전통예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덕분이었다(진옥섭, 『노름마치』).

 예정된 프로그램보다 앙코르·여흥이 더 짭짤한 공연을 가끔 만나는데, 12일 저녁이 그랬다. 사람의 몸 중에서 가장 나중에 늙는 게 목소리라고 했다. 유금선 여사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청아한 목소리로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부를 때 관객들은 숙연했다. 뜻밖의 철 지난 유행가가 구음 못지않은 무게로 귀를 파고들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70년 가까이 ‘해어화’라는 성(性) 차별, 직업 차별이 밴 칭찬 아닌 칭찬을 먹으며 살아온 한이 느껴져서일까. 노래가 모든 할머니, 어머니, 딸들의 설움을 자아내서일까. 다른 남자 관객도 나처럼 식은땀이 났을 것이다. 요즘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돌아보았을 것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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