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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치킨집과 인천공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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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윤호
논설위원

한 집 건너 하나일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음식점들. 치킨집, 김밥집, 피자집, 삼겹살집…. 간판은 수시로 바뀌지만 업종은 여전하다. 아파트 상가나 골목 상권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퇴직금을 털거나 은행 빚을 얻어 거리로 나선 50대 베이비부머들의 고단한 생계 현장이기도 하다. 부실한 연금, 꽉 막힌 재취업 길 탓에 너도나도 뛰어들었지만 성공은커녕 빚 떠안고 주저앉는 이들이 더 많다. 며칠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치킨집을 사례로 들며 포화상태의 자영업,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 빈약한 사회복지 등을 뭉뚱그려 한국 경제의 그늘로 보도했다.

 이에 비해 같은 날 국내 언론의 인천국제공항 스케치 기사들은 영 딴판이다. 추석 연휴 중 32만 명이 해외로 나간다, 비행기 표가 동났다, 워낙 붐벼 공항에 일찍 나와야 한다…. 연휴에 해외여행 다녀올 정도의 여유 있는 이들이 제법 된다는 얘기다.

 치킨집의 딱한 사연과 인천공항의 북새통.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의 풍경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질적이다. 소득 양극화가 빚어낸 강렬한 대비다. 좀 있는 이들은 해외에서 돈 쓰고, 어려운 사람은 쓸 돈이 없다. 그러니 내수가 살아나기 어렵고, 기업도 내수용 투자에 인색하다. 경제엔 부자들의 남아도는 저축도 필요하지만 일반 대중의 광범위한 소비가 더 중요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치킨집과 인천공항은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위기가 오면 약한 자부터 쓰러지고, 강한 자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법이다. 불황을 견뎌낸 소수는 낙오한 약자들을 집어삼키며 덩치를 키운다. 외환위기 이후 아프도록 실감하지 않았나.

 지금의 양극화는 그동안 겪었던 위기의 결과이자 앞으로 찾아올 위기의 원인일 수도 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12일자 뉴욕타임스의 칼럼에서 미국의 소득격차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최근의 경기 회복세를 ‘부자들의 회복’으로 규정하고 양극화가 미국 사회를 부식시킨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런 걱정을 늘어놓으면 꼭 반론하는 분이 있다. 기회균등을 보장하면 되지, 왜 양극화라는 결과의 불균등까지 시정하려 드느냐는 주장이다. 나름 일리 있지만 현실이 어디 그렇나. 어제의 기회 균등은 오늘의 결과의 불균등으로, 그리고 이는 내일의 기회 불균등으로 이어지곤 한다. 부잣집 자녀들이 명문대에 더 많이 들어가고, 졸업 후 고액 연봉자가 될 기회를 더 쉽게 잡는다 하지 않나. 개천에선 피라미만 놀고 용은 강남에서 태어난다는 비아냥도 그래서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 양극화 대책은 ‘국민 행복’을 위해서뿐 아니라 시장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기회 균등만 신주단지처럼 모신다고 문제가 절로 풀리는 건 아니다.

 이쯤 해서 또 다른 차원의 반박이 나올 법하다. 성장을 놔두고 분배를 우선하자는 얘기냐 하며 말이다. 여기엔 파이를 더 키운 뒤에 나눠야 한다는 주장도 세트로 따라다닌다. 그런데 파이는 한번 먹으면 없어지지만 경제는 그렇지 않다. 성장과 분배가 서로 영향을 주며 역동적이고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경제다. 애초에 경제를 파이에 비유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이국영, 『공황』). 정 파이에 빗대려면 ‘크든 작든 끼니마다 파이를 계속 구워내면서(성장) 몫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잘 잘라야 한다(분배)’는 표현이 낫다.

 현오석 부총리는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이만하면 됐다고 안심하는 것은 축구로 비유하면 선제골 넣은 뒤 그대로 경기가 끝나길 바라며 수비에 치중하는 소극적인 자세”라고 표현했다. 또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옳은 말이다. 다만 그가 골 넣는 장면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가 득점을 인정받으려면 치킨집 주인도 가게 잠시 닫고 여행이라도 다녀올 형편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수비에 치중한다 해서 야유하는 관중은 없을 듯하다.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