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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바랜 그 책장 위에, 청춘의 한 시절 묻혔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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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47년 백양당에서 출간된 이상의 『이상선집』(사진 왼쪽)과 1955년 정음사판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사진 영인문학관]

책은 작가가 깃든 공간인 동시에 독자를 향해 열린 문이다. 그렇게 보면 희귀본은 몇몇의 독자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비밀의 공간과 같다. 이 비밀의 문이 열리는 자리가 마련된다. 27일부터 11월 24일까지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는 희귀도서전 ‘이런 책을 아시나요’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에서 책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책의 유실·손상이 잇따랐고, 이념 갈등 속에 월북작가의 작품은 세상의 빛을 보기 힘들었다.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책의 수명도 짧아졌다.

 전시회에는 1894년 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교순사)부터 1979년 오상원의 『백지의 기록』(청구출판사)까지 작고 문인들의 작품집 400여 점이 나온다.

전시는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한국문학사를 따라 걷는 것과 같다. 1935년 출간된 김동인의 『감자』(한성도서)와 박완서의 『나목』(여성동아 11월호, 1970) 등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은국의 『순교자』(삼중당, 1964)와 독일에서 더욱 유명해진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여원사, 1959)도 만날 수 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한성도서, 1951), 정지용의 『백록담』(문장사, 1941),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55), 이상의 『이상선집』(백양당, 1947) 등은 그 자체가 한국시가 밟아온 여정이다.

 전시 작품의 80%가 작가 친필 서명이 있는 서명본이라는 점도 반갑다. 강인숙 관장은 “작품집은 작가의 얼굴인 동시에 시대의 얼굴이다. 종이질이나 장정·인쇄법·글자 등에 작가의 취향과 작가가 살던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한 세기 우리 작가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기간 중 매주 토요일에는 소설가 최윤씨와 김종회 경희대 교수, 황인뢰 PD 등이 문학과 예술에 관한 강연을 한다. 02-379-3182.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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