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한지상, 악마성의 쾌감, 또 다른 나를 만났죠

중앙일보

입력 2013.09.17 00:19

업데이트 2013.09.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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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너무 착해 보이는 이미지가 싫어 콧수염도 기르게 됐다”고 한다. 순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카메라 셔터가 돌아가자 한지상은 숨겨진 끼를 과감히 드러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남자, 원래 이렇게 ‘양아치’스러웠나.

 뮤지컬 배우 한지상(31)의 최근 행보가 그렇다. 상반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배신의 아이콘 유다를 리듬감 충만한 댄서로 묘사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한여름엔 ‘스칼렛 핌퍼넬’로 궁상 맞은 히어로의 깨알 같은 잔재미를 선사하더니, 현재 공연 중인 ‘보니 앤 클라이드’에선 세상을 향해 울분의 총질을 마구 해대는 은행털이범을 연기하고 있다.

 이 정도면 가히 악역 전문 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감옥이 있질 않나요. 저에게도 내면 깊숙이 사악함과 야비함, 음습함 같은 게 있고…. 창살을 뚫고 나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악마성을 표출하는 거죠. 그게 너무 통쾌해요.”

 한지상은 무엇보다 노래를 잘한다. 뮤지컬 관객을 상대로 “가창력이 가장 뛰어난 배우가 누구인가”라고 설문조사를 하면 빠지지 않고 세 손가락 안에 늘 꼽히곤 했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에 정확한 음감까지. 안정감 있는 보컬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노래는 잘 하는데, 한방이 없다는 꼬리표가 붙곤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나쁜 남자 향취를 물씬 풍기며, 화끈한 매력남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10월 27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의 한지상.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승우형 덕분”이란다. 2009년 군 복무를 했는데, 조승우랑 같은 서울경찰청 산하 호루라기 부대에서 8개월간 근무했다.

 “같이 매일 먹고 자니 꾸밀 수 없잖아요. ‘인간 조승우’를 겪은 거죠. 배우로서의 신중함과 결단력, 꼼꼼한 일처리, 엄격한 자기관리, 하지만 주변 사람에겐 따뜻한 모습 등등. 많은 것을 봤고, 자연스레 연기에도 눈을 떴어요.”

 솔직히 무섭기도 했단다. “침상 정리 못 했다고 얼마나 매섭게 혼내든지, 휴-.”

 한지상을 새삼 뮤지컬 무대에 각인시킨 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였다. 엄청난 고음을 밥 먹듯 불러대며 그의 존재감을 맘껏 드러냈다. 정작 본인은 “해외 공연 동영상을 보다 유다가 부르는 ‘I don’t know how to love him’를 듣는데 왈칵 하는 거에요. 강한 드라마에 이끌려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이젠 나름 연기관도 뚜렷해졌다. “솔직함이 꼭 미덕은 아니라는 거죠. 호흡·감정조절·몰입 등 연기의 테크닉이 수반된 솔직함이어야 힘을 발휘한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그는 어느새 데뷔 9년차 배우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를 졸업했다. 노래를 익힌 스토리가 흥미롭다. 대학 진학 때 3수를 했는데, 그때 너무 외로워 500원짜리 동전 하나 넣으면 노래 한 곡 나오는 ‘오락실 노래방’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거기서 스티비 원더·브라이언 맥나이트 등의 노래를 죽어라 부르고, 그 녹음된 걸 집에 와 반복해 들으며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이른바 실전형 노력파다. “야전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게 결국 오래가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한지상은 요즘 ‘최고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한지상의 출연만으로 작품에 안정감이 붙는다”라는 평마저 듣고 있다. 연말엔 소극장 뮤지컬과 연극에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일약 스타가 되기보다 조금씩 진화하는 배우, 그래서 한참 지나서 봤을 때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진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켜온 듯싶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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