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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표명설 도는 황교안 "내가 얘기할 상황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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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검찰 직원들이 사의를 표명하고 검찰청을 떠나려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기다리고 있다. 채 총장이 검찰청을 떠난 이후 서울서부지검은 처음으로 평검사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15일로 예정됐던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의 평검사회의는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박종근 기자]

-13일 사표를 냈다가 반려됐다고 들었다. 다시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가 법무부 주변에 돌고 있는데 맞느냐.’(기자)

 “내가 그것에 대해 지금 얘기할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황교안 법무장관)

 -마음을 비웠다고 들었다.(기자)

 “그 정도로 하자.”(황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15일 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답했다. 황 장관이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설이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황 장관이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던 13일에도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는데 반려됐다는 설이 퍼졌었다. 당시 법무부는 공식 부인했었다. 하지만 황 장관의 감찰 지시가 채 총장의 사퇴의사 표명과 일선 검사들의 반발로 이어지자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황 장관의 감찰 지시에 반발해 채 검찰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검찰 내부 반발 기류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혼외 아들 존재 여부에 대한 진실 규명도 이뤄지기 전에 청와대와 법무부가 채 총장을 사실상 몰아냄으로써 검찰의 중립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성토했다. 특히 이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채 총장의 사표 수리 불가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고도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수석검사는 “사표 수리가 안 됐다고 해서 이미 식물총장이 된 채 총장이 다시 복귀할 수 있겠느냐”며 “채 총장 사퇴의 역풍이 청와대를 향해 불고 검사들의 반발 강도가 예상 외로 거세자 무마에 나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진상 규명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아무런 내용이 없는 청와대의 발표는 무책임하다”고 했다.

 지방에 근무하는 한 평검사는 “혼외 아들 진실게임을 넘어 정치 권력이 검찰총장을 쫓아낸 것이라는 의구심에다 지난 14일 사표를 낸 김윤상 대검 감찰1과장이 기름을 끼얹었다”며 “평검사회의가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자 청와대가 발을 빼려고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 이제 채 총장의 사표를 반려하고 본격적으로 감찰에 나서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젊은 검사들은 사표 수리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가 검찰총장을 이런 식으로 내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중요한 사건일수록 수사할 때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하고 소신대로 사건 처리를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수석검사회의를 열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연락이 쉽지 않아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일부 검사들은 16일 평검사회의를 추진 중이라서 회의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16일이 이번 사태의 고비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채 총장 사태와 관련해 가장 먼저 집단적인 의사를 표명한 건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었다. 이들은 채 총장의 사퇴 소식이 알려진 지난 13일 오후 늦게까지 회의를 열어 “황교안 장관이 감찰을 지시한 이후 검찰총장이 사퇴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으로 비쳐 우려된다. 사표 수리 이전에 진상이 먼저 밝혀져야 한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어 김윤상(44·연수원 24기) 감찰1과장이 14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통해 황교안 장관을 격한 논조로 비난하면서 “차라리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총장 개인의 문제가 조직 전체를 흔들리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북부지검, 부산지검, 수원지검 등에서 평검사회의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열린 곳은 없었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사표는 수리하지 않았으며 진실 규명이 먼저’라고 밝힌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는 채 총장의 혼외 아들설이 사실일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재경 지검의 한 간부 검사는 “검찰총장에 대한 충정은 이해하지만 자칫 ‘검찰의 집단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이가영·전진배·심새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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