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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가 힘든 서민 피눈물 흘리게 해서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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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성식
사회부문 선임기자

건강보험료는 세금과 다르다. 그런데도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불만은 더 많다. 한 해 민원이 6400만 건에 이른다. 세금은 한 해에 서너 번 내지만 건보료는 매달 낸다. 세금 내는 사람은 1359만 명이지만 건보료는 2123만 명이다. 세금보다 더 무섭다.

 지난달 8일 50대 식당 여주인이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이 돼도 꼼짝하지 않았다. 오전 1시30분 복지부 여직원 휴게실에서 ‘밤샘 농성’을 했다. 날이 밝자 쫓겨났고 또 시위를 했다. 지난 6월 건보공단 지사에서 한 민원인이 시너를 뿌리고 자살소동을 벌였다. 최근에는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민원인은 통화하다 화가 치밀어 인천에서 광주광역시까지 곧장 택시 타고 달려갔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건보료에 불만이 있는 지역가입자들. 직장인은 근로소득의 5.89%(절반은 회사 부담)를 내면 되지만 지역가입자는 다르다.

 갓난아이, 행상용 1톤 트럭, 택배용 다마스(경차), 독거노인의 다세대주택, 단칸방 월세 70만원.

 이 중 건보료를 매기지 않는 것은? 정답은 ‘없다’이다. 갓난아이와 구순 노인 한 명에 월 3450원, 야채 행상용 소형 트럭도 3만원이 나온다. 요즘처럼 전세 폭등기에는 전세 건보료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더 심한 것은 월세다. 70만원을 0.025로 나눠 전세로 환산해 1만3000원을 부과한다. 생활비에 불과한데도 그리 한다.

 지역 건보료는 난수표다. 종합소득·부동산·전세·월세·자동차에 부과하고 종합소득이 500만원이 안 되면 가구원수·남녀·연령·재산·자동차를 따져 소득을 추정해 추가로 매긴다. 1977년 직장건보, 88년 지역건보 도입 때의 틀을 아직도 쓰고 있다. 당시 소득 자료가 있는 지역가입자가 10%도 채 안 됐고 자가용 있는 집이 얼마 안 됐다. 재산·자동차가 소득 파악의 보완 지표 역할을 했다.

 25년 동안 세상은 달라졌다. 지역가입자 소득 자료 확보율(소득 파악률)이 50%에 육박하고 소득 축소의 상징이던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이 직장건보로 전환했다. 그런데도 ‘건보 시계’는 88년에 멈춰 있다. 보완 수단이었던 재산·자동차 건보료 비중이 30% 에서 60%로 거꾸로 갔다. 우리가 제도를 베껴온 일본은 10%로 낮췄다. 도쿄도(東京都)는 재산 건보료가 아예 없다. 지난해 3월 도쿄도 메구로(目<9ED2>)구를 방문했을 때 구청 관계자는 “집에 세금(재산세)을 내지 않느냐. 재산에서 소득이 발생하면 물린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저소득층 의료보장에 관심이 많았고 그 일환으로 77년 건보를 도입했다. 그는 76년 “도로 포장을 1~2년 미루더라도 저소득층이 병에 걸렸을 때 신속히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의료보험 발전 단계별 정책 형성 연구』, 신언항). 지역가입자 중에는 빌딩 주인도 있겠지만 소득은 별로 없고 재산·자동차 건보료 때문에 체납하는 저소득층이 상당수다. 병원 이용을 제한하는 6개월 이상 체납자가 157만 세대다. 박 전 대통령이 저소득층을 위한다고 도입한 건보가 이들을 옥죄고 있다.

 정답은 나와 있다. 한국에만 있는 자동차-월세-전세 건보료 순으로 없애면 된다. 다음은 재산이다. 당장 없애기 힘들면 공제 제도라도 도입하면 좋다. 가령 2억원짜리 집이라면 1억원은 공제하고 1억원에만 매긴다. 그러면 노인의 자그마한 주택과 웬만한 전세·월세는 부과 대상에서 빠진다. 줄어드는 건보 수입은 임대·이자·배당 등의 종합소득(연 7200만원 이하)이 있는 직장인이 분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근본 대안은 직장·지역 할 것 없이 소득에만 보험료를 매기는 것이다. 세법개정안이 내년에 시행되면 건보공단이 일용근로 소득자료를 국세청에서 받을 수 있다. 4000만원 이하 금융소득 자료도 법령을 바꾸면 확보할 수 있다. 소득 파악률이 거의 100%에 육박한다. 소득에만 매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이다.

 지역건보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와도 거리가 멀다. 지속 가능하려면 지금 칼을 빼야 한다.

신성식 사회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