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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나는 행복하다, 세상에 뭔가 보탰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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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스티븐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까치
192쪽, 1만6000원

참 묘한 책이다. 쉽지는 않은데 재미있다. 지식을 얻기는 힘들지만 지혜를 구하기엔 충분하다. 전신마비로 컴퓨터와 음성합성기의 도움을 받아야 의사소통이 가능한 루게릭병 환자, 그런데도 아인슈타인 이래 가장 유명한 천체물리학자로 꼽히는 이의 육성이 담긴 이 자서전 이야기다.

 ‘허수시간’ ‘무경계’ ‘호킹 복사’ 등 천체물리학 내용이 담겼으니 어지간한 독자로선 이해하기 힘들 터다. 그래도 자신의 지적 여정과 인간적 흥미를 담담히 털어놓은 이 책을 읽고 재미와 교훈을 얻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우선 솔직하다. 1973년에 나온 자신의 첫 저서 『시공의 대규모 구조』를 두고 “일반 독자는 이 책을 읽으려고 애쓰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매우 전문적일뿐더러 내가 순수 수학자 못지않게 엄밀하려고 애쓰던 시절에 썼다”고 말한다.

 곳곳에 있는 유머도 매력적이다. 미국 체류 때 킴 손이란 학자와 시그너스 X-1이란 쌍성계에 블랙홀이 존재하는지를 두고 내기를 했는데 킵이 이겼단다. “나는 패배를 인정하면서 약속에 따라 그의 아내가 언짢아하는 것을 무릅쓰고 ‘펜트하우스(그 유명한 도색잡지!)’의 1년치 정기독권을 주었다”고 털어놓는 식이다.

 과학자의 자서전인 만큼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도 빠지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역설’이란 게 나온다. “만일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기 전에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당신이 현재에 존재하게 될까.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을 것이다”란 설명이다.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리란 사실을 길게 설명하면서 드는 비유다. 정보는 사라지지 않지만 유용한 방식으로 회수되지도 않는다는 ‘정보의 역설’은 블랙홀의 증발을 둘러싸고 나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이를 “백과사전을 태울 때 만일 그 연기와 재를 보존한다면 사전에 담긴 정보는 원칙적으로 사라지지 않지만 그 정보를 읽어내기는 매우 어렵다”라고 비유한다.

 그는 책 말미에 “장애인은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일에 집중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아쉬워하지 말아야 한다”며 알차고 흡족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리고는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는 겸사로 마무리하는 이 책은 과학책의 딱딱함이 아니라 에세이의 향취가 풍긴다.

 스티븐 호킹의 학문적 성취가 궁금하다면 『시간의 역사』를 읽는 게 마땅하리라. “딸의 학비를 대기 위해” 또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내가 느끼는 대로 설명하고 싶어” 썼다는 이 책은 과학책으로는 드물게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렸다. 최근에 나온 영국 과학 저널리스트의 평전 『스티븐 호킹』(키티 퍼거슨 지음, 해나무)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호킹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킹을 만나고자 한다면 이 책이 적합해 보인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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