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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1 09:42:45

[박치문의 검은 돌 흰돌] 뭉쳤다 바둑상비군 … 첫 훈련 100% 출석

중앙일보

입력 2013.09.13 00:15

업데이트 2013.09.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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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왼쪽부터 박정환, 이동훈, 신진서, 김지석, 변상일.

바둑은 개인전이다. 개인의 창의와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혼자만의 연구는 한계가 있고 공동연구가 중요하다는 이론도 있다. 공동연구를 하면 자라나는 어린 기사들이 최고수들의 노하우를 쉽게 배울 수 있다.

고수 입장에선 매일 적수로 만나야 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터득을 그대로 밝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대목은 미묘하다. 하나 제아무리 최고수라도 공동연구를 하다 보면 배우는 게 있다.

 일본 바둑의 몰락은 ‘기타니(木谷) 도장’의 폐쇄와 더불어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기타니 미노루 9단이 세운 이 도장은 오타케 9단, 다케미야 9단, 조치훈 9단 등 일본의 최정상 기사 80여 명을 배출해냈다. 초창기 한국 바둑을 이끈 조남철 9단과 김인 9단도 이 도장 출신이다. 기타니 도장은 도장 출신 프로들이 모여 바둑을 공동연구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 출신은 차례로 일본의 정상에 오르며 일본 바둑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1975년 도장이 문을 닫으면서 기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400년이나 화려하게 꽃피웠던 일본 바둑도 자양분을 잃으며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한국엔 충암연구회가 있었다. 연구 모임의 주인공은 10대의 천재 이창호와 그의 8년 선배 유창혁. 월등히 실력이 뛰어난 두 젊은이는 자신의 속생각을 100% 드러내며 서로를 키웠고, 그 연구를 지켜보는 후배들은 저절로 살이 쪘다. 한국 바둑이 급성장한 것은 이들의 공적이 컸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국가대표를 상비군으로 운영했다. 창하오나 구리 같은 정상급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 후배들을 키웠다. 오랜 세월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리던 중국이 드디어 2013년 한국을 훌쩍 뛰어넘었는데, 그 일등공신으로 ‘국가대표’가 꼽히곤 한다.

 한국기원이 상비군 제도를 도입했다. 남자 32명, 여자 8명.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이 빠졌지만 랭킹 1위 박정환과 2위 김지석 등 상위 랭커 11명과 이동훈·변상일·신민준·신진서 등 영재들이 모두 포함됐다. 보상도 미미한데 일류들이 제대로 모이겠느냐 싶었지만 10일 첫 훈련 때 당일 대국이 있었던 6명을 제외한 전원이 참석해 예상을 뛰어넘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중국은 올해 4개 세계대회를 휩쓸었다. 더 큰 충격은 LG배와 몽백합배 두 대회에서 한국이 16강전에서 전멸해 버린 사건이었다. 때마침 10일 중국에서 또 하나의 비보가 전해졌다. 여자 세계대회인 궁륭산 병성배에서도 중국이 4강을 모두 점령해 버린 것이다.

 한국 기사가 패배하기를, 그래서 4강의 한 쪽이라도 중국에 내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때도 있었다. 도쿄에서 열린 후지쓰배 결승전에서 한국 기사끼리 연속 결승전을 벌이던 때가 엊그제였다. 그때 일본 팬들이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해설장을 가득 메운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한국 팬들은 한국 기사가 안 보이는 대회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걸 생각하면 한국 바둑은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돈을 거의 안 주는 국가대표 상비군은 프로세계에선 편법이고 꽤 어색한 제도다. 영재들에겐 기회일 수 있지만 최강자들에겐 고통이고 회피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상비군에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는 현 상황이 워낙 급박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올해 5월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을 꾸렸고 국민 모금도 이어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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