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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세속적 성공 너머 뭐가 있는지 물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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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베키나 신부는 “좋은 대학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뭔지를 학생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다. [김형수 기자]

로마 교황청은 단순히 가톨릭 신앙의 중앙정부가 아니다. 거대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 가르치지는 않는다. 산하 교육부에서 전 세계 1500개 가톨릭계 대학교의 교육방향·이념 등을 관장한다. 한국의 가톨릭대·서강대 등이 이에 속한다. 신앙과 이성, 두 축에 의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춤과 동시에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능동적 시민을 기르는 게 가톨릭의 교육 목표다.

 이런 가톨릭 고등교육의 실무 최고위직인 프리드리히 베키나(47) 신부가 한국을 찾았다. 교황청의 교육부 차관보인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0년째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다. 아시아 8개국 44개 가톨릭계 대학 이사장·총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가톨릭대(총장 박영식)에서 열린 총회(ASEACCU)에 참석한 길이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교육철학은 단호했다. “흔히 대학 랭킹 평가에서 순위 높은 대학을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그 순위의 기준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유네스코 활동을 하며 한국의 교육 전문가들을 자주 만났다는 그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도 따끔한 조언을 했다. 한마디로 “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이 그 자체로 나쁠 건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오히려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한국이 이만큼 경제성장을 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다. “인생의 진정한 성취감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나 높은 보수,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 등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았던 기억,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 충만한 성취감을 가져다 줍니다.”

 때문에 신부는 “좋은 대학은 세속적 성공 너머에 뭐가 있는지, 무엇이 인생의 진정한 가치인지 등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또 대학을 선택하는 사람의 사정에 따라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인지도 달라진다. “가령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경주용 자동차인 F1 자동차는 뛰어난 차량이지만 가족 여행에 적합하지는 않은 것처럼 좋은 대학은 학생들의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학력 상위 5%의 인재를 뽑아 최고로 교육시키는 학교보다 저학력 학생들을 받아 많은 발전을 이루도록 하는 학교가 좋은 학교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한 사람이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교육’이라고 정의한 그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우리가 지금 어떤 대학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베키나 신부는 “불만스러운 교육 현실을 바꾸는 건 결국 변화의 확신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라며 “어떤 대학이 한국 전체를 위해 좋은 대학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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