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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전·월세 상한제 도입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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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전·월세 상한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치솟는전세금 부담에서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선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상한제를 도입하면 전셋값이 단기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후진적 주택 시장 정상화시킬 수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
학과 교수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시절 주택거래는 6 대 4의 비율로 매매 비중이 컸지만 지금은 2 대 8의 비율로 임대가 압도적이다. 현재 전체 가구의 60%는 임대로 살고 있지만 임대차 시장에서 임차인의 주거적 삶에 대한 제도적 보호는 전무하다. 올바른 주택정책은 이젠 매매시장으로 옮겨가지 않는 절대 다수의 가구가 임대차 시장에서 안정된 주거적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안전한 임대주택의 공급과 적정수준의 임대료 유지는 임대차 시장 안정화를 돕는 두 핵심 장치다. 전자가 중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면 후자는 당장이라도 쓸 수 있는 카드다. 전·월세 상한제는 임대차 시장에서 임대인과 협상하는 임차인의 주거권 행사를 돕는 것으로 적절히 활용되면 우리의 후진적 임대차시장을 선진국형으로 바꿔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부 시장전문가들은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전세난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면 임대인들은 4년치 전셋값을 일시에 올리고 집 세놓기를 거부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기실 블랙마켓과 같은 한국의 임대차 시장을 ‘정상시장’으로 간주할 때만 유효하다. 전·월세 상한제는 관행에 의해 정당화되는 퇴행적 임대차 관계를 헌법과 민법상의 투명한 ‘갑과 을의 대등한 관계’로 돌려놓는 최소한의 장치다.

 전세와 같이 총액규모가 큰 임대료는 조금만 인상해도 임차인의 주거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가구의 절대 다수가 임대차 관계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임대료의 적정 관리는 국민복지나 임대차시장 안정화를 위해 절대 필요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임대료는 다양한 정책과 제도규준에 의해 규율된다. 선진국의 임대료는 대개 헌법이나 민법 등에 보장된 재산권자(임대인)와 주거권자(임차인) 간 협상과 타협의 결과로 책정되고 다양한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영국의 ‘물가연동 공정임대료와 임대료 조정 제도’, 프랑스의 ‘건축비 연동 임대료 상한제와 임대인-임차인협의체를 통한 임대료 조정 제도’, 독일의 ‘지역별 차임 제도’ 등은 시장 질서를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회적으로 규율되는 임대료 제도의 예들이다.

 반대론자들은 전·월세 상한제가 위헌적이고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과 민법에서는 갑(임대인)과 을(임차인)의 대등한 관계를 규정하고 있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 상한 규정을 이미 두고 있다. 따라서 전·월세 상한제는 민법에 보장된 임대인과 임차인의 대등한 관계를 반영하는 공정임대료에 가깝게 되어 헌법과 민법의 정신을 살려낼 뿐만 아니라 시장친화성마저 담아낸다.

 반대론자들은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면 가격이 일시에 오르고 전셋집 품귀도 두드러질 것이라고 한다. 제도 도입이 결정되면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많다. 가령 특정 지역에 우선 도입하되 지역의 수년간 임대료를 조사해 산정한 표준임대료기준을 국토부령으로 만들어 실시하면 일시적 가격상승을 관리할 수 있다. 일정시점 후부터 모든 지역에서 상한제가 실시되면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표준기준과 절차에 따라 가격을 협상하게 돼 가격과 공급의 안정화가 자연히 이루어진다. 최근 한 방송사 조사에서 응답자의 76.5%가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지지한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전세 공급 위축시켜 상황 더 악화시킬 것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은 현재 구조적인 변화 속에 있다. 그동안 전세주택을 공급해 오던 사람들이 서서히 전세시장을 떠나고 있다. 전세는 주택가격이 상승해야만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는데, 장기간 주택가격이 안정되면서 전세를 공급할 유인책이 없어진 것이다. 그나마 있던 전세공급자들은 저금리 때문에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다. 전세금을 받아 이자소득을 올리는 것보다 월세를 받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세가격 상승에는 이런 구조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전·월세 상한제라고 하는 가격규제가 들어오게 되면 전세 공급자의 시장 이탈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전세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선한 의도가 전세공급을 위축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임대주택 공급자가 주택을 빈 공간으로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다. 또 규제가 시작되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것이 당분간 어려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의 전세난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반론이 있기는 하다. 물론 단기적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3~4년이 지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동안 눌려왔던 전세시장 탈출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당에서 고려하고 있는 전·월세 상한제는 기존 임차인에게만 통제된 임대료를 적용하는 ‘유연한 임대료 통제 시스템’으로 유럽 각국에서도 별문제 없이 잘 사용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했기에 잘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유럽에서 그런 시스템이 비교적 잘 작동하는 것은 민간임대주택 공급자들에게 양도소득세 감면, 저리융자, 투자액에 대한 세액 공제 등과 같은 강력한 유인책을 주었거나 주고 있기 때문이다.

 ‘3년간 20%’로 임대료를 통제한다는 독일도 1980년대 있었던 주택가격 상승 붐과 함께 양도소득세 감면 같은 인센티브로 인해 민간 임대주택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현재와 같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간임대주택의 공급량이 많다 보니 3년간 20% 인상 한도가 별다른 규제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은 민간임대 부문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 1988년 주택법을 개정하면서 신규 임대계약에 대해서는 임대료 규제를 폐지했다. 프랑스의 경우 투자금액의 일정 비율을 소득세에서 공제해주고 있다.

 임대인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는 국내 상가임대차시장은 임대료 규제에도 불구하고 잘 굴러가고 있지 않느냐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상가임대차법에서 정하고 있는 임대료 상승률 한도는 현재 연 9%다. 임대료 규제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잘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임대료를 크게 규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임차인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 중 하나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목표는 전·월세 상한제와 같은 임대료 통제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이 비록 유연한 통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에 앞서 민간임대주택 사업자에게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고, 그 대가로 이들을 정부의 통제 속으로 들어오게 해야 ‘임차인의 안정적 거주’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서구의 경험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 학과 교수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