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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몇 백억 걷으려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죽이는 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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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왼쪽부터 김영환, 원혜영, 정병국.

기부금 세제 혜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는 내년 세법개정안이 고소득자의 기부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본지 보도(9월 4일자 1면)와 관련해 정치권은 “개정안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여주-양평-가평)은 4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조치는 이제 갓 싹을 틔우기 시작한 기부문화와 나눔문화를 망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정부안에 따르면 연봉 7000만원 받는 사람이 200만원을 기부할 경우 내년에는 올해보다 18만원 정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며 “기부는 부자의 사회적 배려를 유도하는 장치인 만큼 반드시 (세법개정안을)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의 세법개정안 마련 과정과 방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대통령이 세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하니 정부가 깊은 고려 없이 졸속행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세수 확보에만 열을 올리다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당 김영환 의원(경기 안산 상록을)과 원혜영 의원(경기 부천 오정)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세법개정안은 1월 시행한 조특법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두 의원은 지난 2월 지정기부금을 소득공제 종합한도에서 제외하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으며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김 의원은 “조특법은 지정기부금을 소득공제 한도에 포함시킨 게 문제였고, 이번 세법개정안은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고소득 기부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며 “세법개정안은 기부문화의 싹을 자르는 반(反)기부법인 만큼 정기국회에서 검토해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세금 몇 백억 걷으려고 고소득 기부자에게 세금 부담을 늘리는 건 전형적인 소탐대실(小貪大失·작은 이익을 취하려다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이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문화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원 의원도 “농산물 가격 안정에는 직거래가 답인 것처럼, 기부도 직거래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세금 부담을 최소화해야 기부 문화가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원 의원은 올 1월 부친상 조의금 전액을 기부했다. 원 의원의 부친은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이다. 2009년에도 모친상 조의금 1억원을 구호단체에 내놓았다. 원 의원은 “조특법·세법개정안은 고액기부 확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모든 소득 구간에서 조특법이 시행되기 이전(2012년을 지칭)보다 세제 혜택이 줄어들지 않도록 조특법·세법개정안의 독소조항을 고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김동호·신준봉·이정봉·김혜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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